
"연기는 결국 기세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으며 생기는 여유가 더 좋은 연기를 만들어줄 거라 믿습니다."
배우 하윤경이 tvN 주말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을 통해 다시 한번 제 옷을 입었다. 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10년이라는 시간의 켜를 묵묵히 쌓아 올린 뒤에야 비로소 여유라는 단어를 꺼내 놓았다.
그는 "어떤 분야든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지만, 배우라는 업은 그에게 여전히 어렵고 작아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낼 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고, 그 내공은 고스란히 작품의 기세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은 1997년 수상한 돈의 흐름을 감지한 증권감독원 감독관 홍금보가 말단 사원으로 잠입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시청률 역시 뜨겁게 응답했다. 처음 3.5%로 시작한 시청률(전국 일일, 닐슨코리아 집계)은 입소문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상승해 어느덧 두 자리대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기록하며 안방극장을 집어삼켰다.
하윤경은 "요즘 시청률 나오기 참 어려운데, 7%만 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가 넘는 걸 보고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이 난리가 났다"며 "수치를 확인할 때마다 동료들과의 단톡방이 터졌었다"고 흥행의 기쁨을 전했다.
특히 그는 함께 호흡한 배우 박신혜에게 공을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에게 홍금보(박신혜 분)와의 '워맨스'는 작품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였다.
하윤경은 "괜히 흥행불패가 아니더라"며 "전체를 보는 눈부터 디테일한 수정까지, 무엇보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제안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완벽주의자였다"고 박신혜를 향한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
작품의 빈 구멍을 채워 넣는 박신혜의 선구안에 감탄했다는 그는 "대본상 논리적으로 맞지 않거나 감정이 비어 있는 지점을 귀신같이 캐치해서 직접 채워 넣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기술적인 카메라 위치까지 후배들에게 세심하게 알려주는 모습에 정말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폭발적인 흥행 뒤에는 '301호 룸메이트'와 '여의도 해적단'이라는 끈끈한 케미도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롯데월드를 함께 갈 정도로 돈독해진 사이다. 하윤경은 301호의 관계를 가족에 비유했다.
"신혜 언니는 엄마, 제가 아빠였어요. 최지수, 강채영 배우는 병아리 같은 자식들이었죠. 언니가 간식을 잔뜩 하오고,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저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건 이렇게 해'라고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장난을 주도했어요."
좁은 세트장에서 부대끼며 나눈 진심은 카메라 밖에서도 이어졌다. 여의도 해적단에 대해서도 "새로운 조합이 생겨나며 또 다른 시너지가 나오더라"며 "화면을 뚫고 나오는 호흡은 거짓말을 못 한다. 인연이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동료들과의 호흡이 즐거움이었다면, 고복희라는 인물을 빚어내는 과정은 치열한 사투였다. 과거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봄날의 햇살'로 불렸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얄미운 가시 돋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속내는 여린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줬다.
하윤경은 "복희는 사회적 가면을 자유자재로 쓰는 프로페셔널한 인물이다. 버튼을 누르면 환하게 웃다가도 끄는 순간 누구보다 외로워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설득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갈매기 눈썹, 진한 입술, 특유의 손짓까지 직접 설정하며 고복희다움을 고민했다는 그는 "처음엔 미워 보일까 고민했지만, 살아남기 위해 바짝 기는 모습이 오히려 이 친구의 처절한 세월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하윤경인 줄 몰랐다", "전작의 캐릭터가 생각 안 난다"는 댓글이 그에게는 가장 큰 찬사였다. 고복희와의 싱크로율을 묻자 그는 "저도 사실 사람을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라 벽이 좀 있다"며 '하지만 내 사람이다 싶으면 다 퍼주는 면이 복희와 닮았다"고 답했다.
데뷔 후 벌써 10년이 넘은 그는 이제야 비로소 여유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어떤 분야든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배우는 아닌 것 같다"며 "할수록 어렵고 작아지는 순간이 많다"고 깊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제는 어떻게든 해낼 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나이를 먹으며 생기는 여유가 더 좋은 연기를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연기는 결국 기세"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야무진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차기작 JTBC 새 드라마 '신의 구슬' 등을 통해 또 다른 캐릭터를 예고한 하윤경은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잠 못 자가며 소소한 지점까지 신경써서 만든 작품인데, 그런 디테일들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복희는 이제 도피처였던 캘리포니아가 아닌,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겁니다. 저 또한 그렇게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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