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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선순환하는 '선한 영향력'

입력 2026-03-06 17:35   수정 2026-03-07 00:19

지난해 12월 연세대 대강당에선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탓에 웃음과 울음마저 잃고 살던 아이들이 원하는 악기를 찾아 수개월간 연습한 뒤 합주를 선보였다. 1600석 규모 강당 무대에 오른 아이들은 기타, 색소폰, 클라리넷 등을 손에 들고 여름 내내 흘린 구슬땀의 결실을 보여줬다.

아빠 엄마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아이들은 장애의 틀을 깨고 나와 처음으로 ‘자기만의 소리’를 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 ‘버터플라이’(러브홀릭) 등의 연주가 강당에 울려 퍼지자 객석을 메운 부모와 청중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이날 공연은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의 기부로 시작됐다. 슈가는 지난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아이들을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50억원을 전달했다. 그의 본명을 딴 ‘민윤기 치료센터’가 문을 열었고 아이들을 위한 합주 치료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세 살이 되기 전 증상이 시작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신경 발달이 늦어져 사회성과 언어능력 등을 잃는 질환이다. 이 병을 앓는 아이들은 성장기 자연스레 익히는 표정, 몸짓 같은 사람 간 신호를 이해하지 못해 또래와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증상이 폭넓고 다양해 ‘스펙트럼’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병을 단번에 고쳐주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차곡차곡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워주는 치료가 필요한데 그동안 이를 위한 장소도, 프로그램도 마땅치 않았다. 센터를 통해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속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슈가의 첫 기부는 새 생명을 얻어 계속 자라나고 있다. 센터가 문을 열자 이곳을 향한 BTS 팬 ‘아미’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까지 센터엔 5000여 명이 4억2000만원을 기부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 각국에서 1800여 명이 전한 금액만 1억7000만원에 이른다. 아픈 아이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아이돌의 의미 있는 행동이 그의 팬 사이에서 희망을 나누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매순간 고군분투하는 병원은 선한 영향력의 선순환을 올곧이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병을 이겨내는 데 힘이 된 의료진에게 표할 고마움을 대신해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돕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유족은 2021년 소아암과 희소질환 극복에 써달라며 3000억원을 쾌척해 기부의 정석을 썼다. 기금 운영 등은 서울대병원에 위탁했지만 단 하나 조건을 달았다. “특정 의료기관에 치우침 없이 전국 모든 병원에서 치료에 소외된 환자가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섯 살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하던 열세 살 김다엘 군은 ‘이건희 기부금’으로 면역세포가 암만 찾아가 없애주는 치료(CAR-T)를 받았다. 약이 잘 듣는 환자는 완치까지 가능해 ‘유도탄 항암제’란 별칭이 붙었지만 상용화된 치료제는 가격만 3억원에 달한다. 기부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치료다. 바닥난 체력 때문에 산책 한 번만 나서도 열 번 넘게 쉬어야 하던 다엘이는 이제 쉬지 않고 집까지 걸을 수 있다. 집보다 익숙하던 병원 학교를 졸업하고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도 꾸게 됐다.

생후 15개월 만에 허벅지에 큰 덩어리가 생겼지만 병명을 못 찾아 ‘진단 방랑’을 하던 네 살 소녀도 도움을 받았다. 기부금을 활용해 200만원 넘는 유전자 검사를 받고 ‘고형암’이란 병명을 찾았다. 아이는 오랜 방랑을 끝내고 치료를 시작했다.

지난해 이건희 기부금으로 원인 모르던 질환의 정체를 알게 된 환자는 6254명이다. 이 중 4460명은 치료로도 이어졌다. 전국 201개 병원에서 이들의 진료에 참여한 의사만 1571명이다. 선천성 희소질환 치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픈 환자들이 직접 등록한 검체 데이터는 1만5217건이다. 도움받은 환자의 또 다른 기부가 신약과 진단법 개발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이들이다.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이 선대회장의 유지다. 그는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됐지만 고귀한 뜻은 그대로 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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