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량, 도로 등은 지형, 기후 조건 등에 따라 하나도 같은 작업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작품을 남기는 셈이죠.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김동수 전 대림산업(현 DL이앤씨) 건설사업부 국내사업담당(사장)은 지난 6일 40여 년간 토목 사업에 헌신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림산업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한국뿐 아니라 중동과 동아시아 지도를 바꾼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세계 최장 현수교(3563m)인 튀르키예 ‘차나칼레 대교’, 국내 최대 경간장(교각과 교각 사이 거리·1545m) 현수교인 전남 광양 ‘이순신 대교’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지형, 기후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는 도전적인 작업을 한다는 게 토목공학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건설업의 위기’라고 여겨지는 지금도 기회가 있다고 강조한다. 1970년대 이후 지어진 도로 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교체 시기가 다가오고, 기후 위기 등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설계가 필요한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어서다. 그는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기회가 많다”고 했다.
▷건설업의 위기라고 합니다.
“한국은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고, 건축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국내에서 기회를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해외는 다릅니다.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아시아 등에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이미 대형 건설사는 2010년대 들어 동남아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브루나이에서 템부롱 교량을 세우고, 튀르키예에는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를 지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기업이 아니면 해외 진출이 쉽지 않습니다.
“한국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지어진 인프라가 노후화되고 있죠. 미국만 해도 노후 인프라 교체 사업에 2조달러(약 2864조원)의 예산을 책정했습니다. 낡은 SOC는 사회 안전과 연관되는 만큼 이와 관련한 연구와 투자가 불가피합니다.”
▷새로운 산업에 따른 수요도 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설계 기준으로는 현재에 맞는 시설을 지을 수 없습니다. 기준을 높이는 연구, 새롭게 보강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에 필요한 전력을 옮기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반대가 심한 송전탑 대신 땅속에 전선을 묻어야 하는데 이 역시 토목 기술이 요구됩니다.”
▷기술 개발에 투자가 필요합니까.
“기존에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공법과 소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여러 규제로 실험조차 어렵습니다. 모형실험은 가능하지만 야외에서 직접 하는 것과 차이가 크죠. 중국은 이런 분야에서 정부가 적극 지원하면서 새로운 공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SOC는 국가의 백년대계 사업입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달라지면 안 됩니다. 집권당이 바뀌더라도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독립된 컨트롤 타워를 세우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기후변화를 대비한 사업은 장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많은 기업이 참여할 겁니다.”
▷최근 국가사업이 유찰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4대강 사업 이후 건설업이 과도한 이익을 가져갔다는 편견이 생겼습니다. 실적공사비라는 것도 도입됐죠. 건설 공사를 계약할 때 예정가격을 각 공사의 특성을 감안해 조정한 뒤 입찰을 통해 계약된 시장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 공사비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는 거죠. 국가 주요 사업이라고 해도 이익이 남지 않아 건설사가 외면하고 있습니다. 사업 지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죠.”
▷건설업 자체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죠.
“건설 면허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실적이 있고 제대로 된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게 면허 발급 요건 등을 강화하고, 공사 입찰 기준도 높여야 합니다. 기술력이 없는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보는 방식으로는 건설업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작은 건설사를 살리는 것과 부실 공사 및 재해를 줄이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공과대학의 인기가 예전만 못합니다.
“공대 기피와 의대 쏠림의 가장 큰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의사는 부족하고 건축과 토목학과 등은 1970년대 중동 특수 시기에 맞춰진 정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인력이 배출되니 값이 내려가는 거죠. 수요에 따라 인원을 재조정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소득 수준이 비슷해진다면 개인 적성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게 될 겁니다.”
▷공대에 가면 돈을 못 번다고들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많이 버는 사람이 평균 연봉을 높입니다. 토목공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업 후 민간투자 사업과 관련해 금융업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에서 실무를 익히고 민간 인프라투자회사나 소수력, 태양광발전 같은 사업을 할 수도 있죠. 어떤 전공을 택하든 아이디어와 과감성이 있다면 돈은 벌 수 있습니다.”
▷공대 교육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요.
“실무 교육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대학이 추구하는 교육과 기업이 원하는 직무 능력은 다를 수밖에 없죠. 서울대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산학협동 강의인 ‘건설환경 종합설계’를 맡았습니다. 4학년 학생에게 시공사 실무진과 프로젝트를 수행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이었죠.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민간투자 사업 입찰, 시행 등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했고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전공으로 토목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적성을 따라간 거죠. 고등학교 시절 개구리 해부 수업을 무서워할 정도로 의과대학은 맞지 않았습니다. 반면 토목은 지형, 기후 조건 등에 따라 다른 작업을 한다는 게 재미있어 보였어요. 매번 새로운 도전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전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왜 대림산업이었나요.
“당시 대림, 삼부, 현대가 건설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였습니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이다 보니 실적이 쌓일수록 입찰에서 유리해집니다. 특히 대림은 교량, 항만, 댐 등 토목 분야에서 업계 1위를 다툴 정도였습니다. 유일하게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는 건설사였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혔죠.”
▷해외 사업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입사 초기 해외에 나가면 월급을 2.5배 많이 줬기 때문에 선택했죠. 이 경험이 아시아 등에서 해외 사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공대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기술 이해도가 높습니다. 공대 출신은 경영 등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데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문과 출신 CEO가 기술을 익히는 것은 어려우니까요. 특히 대림산업은 기술력을 강조하고, 공대 출신 CEO를 많이 뽑는 회사라 덕을 봤습니다.”
▷후학을 위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우주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물이 중국의 만리장성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지만 토목이 얼마나 거대한 작업을 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봅니다. 그 크기만큼이나 보람도 있고,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공과 직업을 정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 김동수 前 사장은…
△1956년 충남 천안 출생
△1975년 경복고 졸업
△1979년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대림산업 입사
△2009년 토목사업본부 전무(국내사업총괄)
△2011년 토목사업본부 부사장
△2012년 토목사업본부 사장
△2014년 건설사업부 국내사업담당
△2016년 두산건설 사장
△2017년 새서울철도 대표
△부민통신 고문
강영연/손주형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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