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석화업계 등에 따르면 LG화학은 고형연료제품(SRF)을 원유를 대체할 열분해유 원료로 활용하기 위해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할 계획이다. SRF는 종이, 목재, 비닐 등 가연성 폐기물을 가공해 만든 제품이다. 현재 화력발전소나 산업용 보일러에서 석탄을 대체하는 연료로만 분류돼 있다. 이를 석유화학 공정의 원료로 활용하려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만큼 규제 특례를 통해 사업성을 검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석유화학산업은 통상 원유를 정제해 제조한 ‘버진 나프타’를 NCC에 투입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폐비닐·폐플라스틱을 고온에서 분해해 얻은 열분해유를 정제해 재활용 나프타를 만들거나, 열분해유 자체를 나프타 대체 원료로 사용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핀란드 정유기업 네스테에 따르면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50~60%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LG화학은 선별·가공을 거친 SRF를 활용해 정제 원유 수준의 고품질 열분해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나프타를 분해하기 위해 고온의 증기(스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기존에는 가스보일러를 사용해 스팀을 만들었는데 이를 전기 가열 방식으로 바꾸고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는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전기를 써서 800~850도의 고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해 기술적 난도가 높다는 한계가 있다. 독일 바스프는 2024년 사우디 사빅, 독일 린데와 함께 세계 최초의 전기가열 스팀 크래커 시범 설비를 준공했다. 그러나 이 설비는 시간당 약 4t의 석유 원료만 처리할 수 있다. 기존 NCC 처리 능력과 비교하면 3~4% 수준에 그친다. 업계가 재생 원료로의 전환을 핵심 ‘브리지 전략’으로 병행하는 이유다.
중소기업들도 앞다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고기능성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체 진영(옛 진영엘디엠)의 자회사 한국에코에너지와 도시유전, 에코인에너지 등이 대표적인 열분해유 설비·기술 기업이다.
정부도 폐자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지원금 체계를 개편해 재활용 나프타 공급 기반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폐자원 재활용 방식 가운데 열분해 지원 단가를 높여 기존 소각·열회수 중심 업체들이 열분해 사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폐자원 ‘투입량’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앞으로는 열분해유 ‘생산량’을 기준으로 차등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 대신 깨끗한 전기 사용을 늘리는 것이다. 교통 난방 등 대부분 분야를 무탄소 전기로 바꾸는 ‘모든 것의 전기화’가 탄소중립의 핵심 전략으로 떠오른 배경이다. 중국이 태양광과 배터리 등 전기화 기술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전기화가 만능 해법은 아니다. 철강·석유화학 같은 산업은 고온의 열이 필요하고 화석연료를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 의존도가 높고 전기화도 쉽지 않다. 세계적 에너지·환경 석학인 바츨라프 스밀 캐나다 매니토바대 명예교수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은 에너지원만 전기로 바꾼다고 해서 탄소 배출을 충분히 줄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수소환원제철 같은 궁극의 탈탄소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브리지’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기술 혁신을 통해 정부의 탄소 감축 목표에 대응하면서도 탄소중립 시대 기술 표준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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