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설사에 3년 전 입사해 서울 본사에 근무하던 직원 A씨는 최근 정기 인사에서 충남 천안 현장으로 발령받았다. 업종 특성상 다른 직원 16명도 지방 현장으로 발령 났지만 A씨만 유독 “동의 없는 발령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출근을 거부했다. 회사는 법에 따라 현장 발령을 보류하고 A씨를 무단결근을 사유로 해고했다. 하지만 법원은 “해고는 과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회사는 A씨에 대해 감봉 조치만 하고 다른 직원을 현장에 보내야 했다.문제는 이 같은 법률 분쟁 증가가 반드시 건강한 권리 의식 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신고 사례 중 처벌이나 조치로 이어지는 비중은 극히 낮다. 지난해 처리 완료된 1만5655건 중 기소된 사건은 101건(0.6%)뿐이었다. 과태료 부과(231건)를 합쳐도 유의미한 처벌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법 위반 없음’으로 종결된 사건은 5077건으로 전년(4758건)보다 늘었다. 신고자가 스스로 취하한 건수(1592건)까지 고려하면 일단 신고하고 보는 ‘묻지마 진정’이 행정력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증가는 권리 의식 향상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동료를 향한 보복이나 압박 수단으로 신고가 오남용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며 “단순 과장, 과민 착각 신고가 대부분이지만 허위·반복, 공모 등 악의적 신고도 적지 않다”고 했다.
기업 현장의 관리자들은 이른바 ‘조직의 동맥경화’를 호소한다. 정당한 업무 지시와 성과 독려조차 ‘괴롭힘’의 굴레에 갇히면서 중간 관리자들이 입을 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이런 현상은 특히 인사조치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때 극대화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 기간 피해 주장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나 근무 장소 변경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근로자는 이를 악용해 징계나 인사 절차 직전 괴롭힘 신고를 한다. 신고가 접수되는 순간 징계 절차가 멈추고 회사는 ‘가해 의심자’를 보호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한다.
고용노동부에 괴롭힘 신고를 하는 동시에 가해자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 회사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민사 소송, 산업재해 청구를 병행해 기업의 대응 비용과 인력 손실이 급증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를 넘어 조직 전체의 사기를 저하하고 이직률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팀장은 “성과가 저조한 팀원에게 피드백을 줬더니 ‘가스라이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부하 직원에게 쓴소리하느니 내가 일을 해버리고 팀 업무는 최소화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신임 근로감독관을 급격히 늘려 현장 경험이 부족한 감독관과 민원인 간 충돌 등 행정력 낭비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 4100여 명이 정원인 근로감독관을 올해 1100명 증원했고, 2028년까지 1만 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명확한 근거 없이 신고된 민원을 처리하느라 정작 보호가 절실한 진짜 피해자의 사건 처리가 뒤로 밀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상욱 변호사는 “악의적 신고는 신고인에게 엄중히 사후 책임을 묻고 오남용 신고의 폐해를 바로잡도록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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