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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양'은 자식 의무?…"국민 5명 중 1명만 동의"

입력 2026-03-09 06:36   수정 2026-03-09 10:18


한국 사회에서 부모 부양을 자녀의 의무로 보는 전통적 인식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조사에서는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만이 "부모를 모시는 책임이 자녀에게 있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제20차 한국복지패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 부양이 자녀의 전적인 책임이라는 의견에 동의한 비율은 20.63%에 그쳤다. 조사 대상은 전국 7300가구로, 응답자의 태도를 "매우 동의함"부터 "매우 반대함"까지 5점 척도로 묻고 이를 다시 범주화해 분석했다.

부모 부양을 자녀의 의무로 보는 시각보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반대 의견은 47.59%로 찬성의 두 배를 넘었으며, 중립 응답은 31.78%였다. 특히 "매우 동의한다"는 응답은 3.15%에 불과한 반면 "반대한다"(39.47%)와 "매우 반대한다"(8.12%)를 합친 비율은 절반에 가까웠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경제적 계층과 관계없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저소득 가구에서 부모 부양 책임에 동의한 비율은 20.66%, 일반 가구는 20.63%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반대 의견 역시 저소득 가구 49.17%, 일반 가구 47.37%로 큰 격차가 없었다. 부모 돌봄을 자녀 개인의 몫으로만 보지 않는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셈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변화 폭은 더욱 두드러진다. 2007년 첫 조사 당시에는 부모를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 52.6%로 과반을 차지했다. 반대 의견은 24.3%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3년 조사에서 찬반 비율이 처음 뒤집힌 뒤 격차는 점차 확대됐다. 2016년과 2019년을 거치며 찬성 비율은 30%대에서 20% 초반으로 떨어졌고, 2025년에는 20% 수준에 머물렀다.

가족 돌봄에 대한 인식 변화는 자녀 양육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가 34.12%로 찬성(33.83%)을 근소하게 앞섰다. 다만 이 문항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저소득 가구에서는 찬성 비율이 39.06%로 일반 가구(33.11%)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보육 서비스 접근성이나 노동 환경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했다.

복지에 대한 국민 인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복지를 가난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선별적 복지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39.81%)가 찬성(33.36%)보다 많았다. 특히 일반 가구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응답이 41.65%로 나타났다. 반면 저소득 가구에서는 선별적 복지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38.96%로 비교적 높았다.

의료와 기초 보육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뚜렷했다. 국가 건강보험을 축소하고 민간 의료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국민 70.50%가 반대했다. 찬성은 9.38%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가 한국 사회의 돌봄 체계가 가족 중심에서 국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효와 가족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떠안았던 돌봄 부담을 이제는 공공 영역이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변화는 향후 복지 정책 설계와 재정 운용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돌봄의 무게 중심이 가족에서 사회로 이동하는 만큼 공적 돌봄 시스템의 확대와 질적 개선이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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