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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빅테크 기업이 글로벌 자본 배분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센터 건립 등을 위해 부채를 크게 늘리면서다. 다른 산업의 자본 조달 비용까지 밀어 올리면서 빅테크의 부채가 글로벌 금융 시장의 뇌관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급증한 빅테크 기업의 부채
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정부 및 기업의 총차입 예정액은 2024년 대비 17% 증가한 29조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OECD 회원국의 중앙정부 국채 발행액만 18조 달러로 추정됐다. 그중 78%는 기존 부채를 갚기 위한 차환 목적으로 발행될 예정이다.작년 말 기준 전 세계 비금융기업의 부채 잔액은 59.5조 달러에 달했다. 작년 한 해 전 세계 기업의 총차입은 13.7조 달러를 기록했다. 그동안 막대한 현금 창출 능력을 자랑하던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 인프라를 운영하는 빅테크)들이 대규모 차입자가 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전의 빅테크 기업은 자금 조달 방식은 보통 내부 잉여현금흐름에 의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 기술 개발을 위해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도입하면서 전례 없는 규모의 외부 부채 조달 체제로 바뀌었다.
마티아스 코만 OECD 사무총장은 글로벌 부채 보고서 발간 브리핑에서 “글로벌 부채 시장은 차입금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부채 상환 비용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특히 AI 관련 자금 조달 수요가 급격히 팽창하여 시장 내 새로운 압력을 유발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알파벳(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텐센트, 알리바바, IBM, 오라클(Oracle) 등 9개 주요 미국과 중국의 하이퍼스케일러가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1220억 달러에 달했다. 해당 금액은 전 세계 모든 기술 기업이 발행한 전체 채권 규모의 45%에 달했다.

해당 자금 중 880억 달러가 작년 연말의 54일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등 특정 시기에 자본 확보에 극심한 쏠림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는 기업들이 생성형 AI 투자 속도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25년 전체 비금융 채권 발행에서의 기술 섹터 비중은 9.6%로 2000년 이후 최고치에 올랐다. 전년 대비 3.9%포인트 올랐다.
향후 예고된 이들 업체 자본적 지출(Capex)도 압도적인 규모다. 최근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하이퍼스케일러 9개 기업의 2026~2030년 누적 자본지출 계획은 총 4.1조 달러에 달한다.
상위 4개 기업만 떼어내도 3.5조 달러에 이른다.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체 비금융 기업들의 연간 총자본 지출 3조 달러를 훌쩍 넘는다. 단일 섹터로서는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 계획이다.
OECD 데이터가 제시하는 고부채 시나리오인 해당 업체가 자본 지출의 절반을 채권 시장에서 조달한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9개 하이퍼스케일러는 2030년에 전 세계 비금융 기업의 평균 연간 채권 발행액의 15% 안팎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우량 회사채 시장 전체가 소수의 기술 기업에 의해 극단적으로 좌지우지되는 과점적 상황이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디라즈 나룰라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미국 채권 발행 전망 보고서에서 “연간 적자가 2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의 근본적인 재정 상황이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막대한 자본 지출 수요가 겹치면서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공모 거래를 요구할 수 있는 최대 상방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 충격파
국채와 우량 회사채는 고정 수익을 추구하는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시장 진입은 국채 시장과 다른 민간 기업채 시장이 한정된 투자 자본을 놓고 하는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 전망이다. JP모간에 따르면 이미 AI 연계 기업이 미국 투자적격 회사채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로, 미국 은행권을 제치고 최대 섹터로 부상했다.하이퍼스케일러들의 차입은 자금 수요의 끝이 아니다. AI 생태계는 반도체 팹, 전력 생산, 첨단 냉각 시스템, 건설 자재를 포괄하는 거대한 오프라인 물리 인프라의 뒷받침 없이는 성립하기 어렵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의 추정을 인용한 OECD 자료에 따르면, 핵심 클라우드 제공업체와 직접적인 AI 모델 개발사를 제외한 인접 산업의 2030년까지 AI 관련 데이터센터 투자 수요는 5.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수조 달러 단위의 추가적인 자본 수요는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감당하기 어렵다. 수 기가와트(GW) 규모의 전력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 시장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부채 확보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대형 은행들의 신디케이트 론은 물론 고수익을 노리는 사모 신용 펀드, 미래의 임대 수익을 기초 자산으로 삼은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상업용모기지담보부증권(CMBS), 기관 투자자 대상의 사모 발행 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인프라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리서치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대 주요 AI 하이퍼스케일러의 향후 3년간 연간 차입 규모는 2020~2024년 연평균 280억 달러에서 최소 1400억 달러, 최대 3,000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회사채 시장의 최대 큰손이었던 미국의 6대 대형 은행이 매년 흡수하는 평균 채권 발행량인 1570억 달러 규모를 압도한다. 모건스탠리는 심지어 올해 하이퍼스케일러 회사채 발행이 4000억 달러까지 갈 수 있고, 미국 내 전체 투자등급채권 발행을 2.3조 달러 수준까지 밀어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급격히 떨어진 담보 가치
일각에선 관련 부채의 담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 업체의 실질적인 최종 담보인 데이터센터의 내재 가치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데이터센터 투자는 주로 물리적인 건물 외관을 건축하고 기계, 전기, 배관 등 기초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 전체 비용의 70% 이상이 집중됐다.이런 물리적 자산은 전통적인 상업용 부동산 자산과 매우 비슷하게 작동했다. 건물의 내용연수는 수십 년에 달했고, 다른 용도로의 전환도 비교적 용이했으며, 감가상각 속도도 완만했다. 대출 기관 입장에서는 담보 가치가 매우 안정적이었고 미래 현금흐름의 가시성 또한 문제가 없었다. 은행과 보험사들은 이런 실물 자산을 담보로 장기 저리의 대출을 쉽게 제공했다.
반면 OECD 분석에 따르면 최신 AI 데이터센터의 비용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AI 연산에 특화된 최신 데이터센터는 초고가, 고성능 컴퓨트 하드웨어(GPU 등)의 가치가 물리적 시설 가치의 3~4배 이상으로 커졌다. 전체 투자 비용의 약 75%를 차지하는 구조가 됐다.
여기서 금융 시스템의 결함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고성능 컴퓨트 하드웨어는 무어의 법칙과 빅테크 간의 기술 개발 경쟁 속도에 따라 '내용연수'가 1~2년에 그칠 정도로 짧다. 1년만 지나도 새로운 혁신의 하드웨어 기기가 나온다. 구형 칩의 내재 가치는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대출 기관이나 채권자 입장에서 담보 가치 산정이 어려워졌다. 차입자가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채무 불이행에 빠졌을 때, 은행이 담보권을 행사해 확보하게 될 자산은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내는 건물이 아니다. 대신 시장 가치가 이미 떨어진 GPU일 확률이 높아졌다. 담보 자산의 수명이 부채의 만기보다 짧아지는 기형적인 구조는 우량 회사채를 사실상 고위험 상태로 만들기 쉽다.
쿤잔 소바니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지난 1월 AI 가속기 칩 전망 보고서에서 "전통적인 CPU가 최신 AI 모델의 막대한 연산 요구를 더 이상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 AI 가속기 시장은 구조적 전환을 겪고 있다"며 "이는 전례 없는 하이퍼스케일 자본 지출을 촉진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리스크가 커진 곳은 공모 회사채 시장보다 사각지대의 사모 신용 시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업 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줄였다. 그 빈자리를 파고들며 성장한 사모 신용 펀드들은 약 2.2조 달러(2025년 기준)의 운용 자산을 굴리고 있다. 최근 AI 투자의 핵심 자금 조달처이기도 하다.
지난 1월 국제결제은행(BIS)이 발간한 'Bulletin No.120'에 따르면, AI 관련 부문에 대한 사모 신용 대출 잔액은 작년 말 기준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전체 사모 신용 잔액 중 AI 관련 대출 비중은 1% 미만에서 거의 8%까지 치솟았다.
불투명한 부채 규모
일각에서는 최근 AI 리스크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글로벌 시스템 위기로 번질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BIS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체 사모 신용 펀드의 약 20%가 AI 부문에 일정 부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적인 펀드의 총 포트폴리오 대비 AI 익스포저(노출)는 아직 10% 미만에 머물러 있어 펀드 전체를 파산시킬 만한 임계점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나 현재 노출된 규모보다는 구조적으로 은폐된 ‘불투명성’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빅테크들은 수백억 달러의 인프라 비용을 전액 자사의 재무제표에 부채로 직접 인식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신용등급 강등과 주가 하락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모펀드(PE)나 인프라 투자 펀드들과 합작 투자 회사를 설립한다. 특정 데이터센터 건립만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등 복잡다단한 기법도 동원한다.

AI 산업의 대규모 자금 흡수가 글로벌 경제 전반의 자본 배분 체제와 금리 환경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산업과 국가에 막대한 기회비용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채권 시장에선 투자자 자금이 무한정 나오지 않는다.
최고 등급의 우량한 신용등급과 큰 규모 시가총액의 하이퍼스케일러가 매년 수천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쏟아내 시장의 가용 유동성을 선점하면, 기존의 전통 산업인 제조업, 소비재, 소매 유통 등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이들은 채권 발행 수요를 채우지 못해 1차 발행 시장에서 밀려나거나,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높은 가산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AI 자체의 버블은 없다고 진심으로 믿지만, 시장이 통화 정책이 아닌 재정 정책과 막대한 국가 부채가 주요 문제가 되는 순간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AI 기업의 대규모 차입이 미국의 국가 부채 등 주권 국가들의 롤오버 국채 물량과 한정된 자본 시장에서 충돌할 경우를 우려한 것이다.
한국도 민감하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본이 소수의 AI 핵심 기업으로 쏠리는 현상은 한국 내부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AI 밸류체인에 탑승한 소수의 수출 대기업과 IT 자산 보유자는 막대한 부의 효과와 넉넉한 현금흐름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자영업, 영세 건설업, 전통적인 내수 부문은 고금리 장기화의 여파와 심각한 자금 조달 경색에 시달리며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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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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