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지의 유명 랜드마크만 콕 짚어 방문하는 이른바 '도장 깨기' 방식의 여행 패턴이 저물고, 고유의 매력을 지닌 '로컬 숙소와 콘텐츠'가 새로운 관광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관광 인프라보다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콘텐츠가 여행지를 선택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2030세대의 국내 여행 수요는 케이블카, 전망대, 구름다리 등 획일적인 관광 시설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특색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였다.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콘텐츠가 지역 관광 수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가 발표한 '데이터로 보는 국내 지역 여행'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여행의 주요 목적은 '미식'이 64.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체험형 프로그램 참여(7.8%)와 드라마·영화 촬영지 등 지역 콘텐츠 관련 방문(3.9%)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연령대별로는 차이가 있었다. 20대 응답자의 '대전' 방문 비율은 7.3%로 부산, 강원, 제주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다른 연령대에서 대전 방문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업계는 이를 '빵지순례'로 대표되는 지역 대표 콘텐츠가 관광 수요를 창출해낸 사례로 보고 있다. 행정구역의 인지도보다 콘텐츠가 여행지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여행객은 지역 관광의 가장 큰 약점으로 콘텐츠 부족을 꼽았다. 지역 여행을 주저하는 이유로 '볼거리나 체험 콘텐츠 부족'이라는 반응은 단일 응답 기준 13.4%, 중복 응답 기준 36.8%였다. 또 지역 관광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제로 '가격 경쟁력 및 서비스 품질 개선'에 이어 '지역별 특색 있는 콘텐츠 및 경험 개발'이 42.4%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여행객이 체험 활동 자체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기대 수준을 충족할 수 있는 지역 고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전의 '빵지순례'처럼 매력적인 로컬 콘텐츠가 새로운 방문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관광의 핵심 주체는 로컬 콘텐츠라고 말한다. 호텔, 리조트형 숙소가 부족한 지역에는 로컬 숙소까지 더해 지역 문화가 결합하면 관광객의 방문을 이끌고, 체류시간도 늘리고 나아가 재방문을 유도하는 지속 가능한 관광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에어비앤비는 지난 5일 제주 서귀포에서 ‘대한민국 방방곡곡: 지역에 머물게 하는 공간·콘텐츠·사람’을 주제로 비전 포럼을 열고 지역 관광의 지속가능한 모델을 논의했다.
이날 포럼에는 서가연 에어비앤비 코리아 컨트리매니저,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본부장, 유현준 건축가 등이 참석해 지역 상생 방안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관광 활성화의 1순위 모객 요소로 차별화된 숙소와 공간 경험'을 꼽았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을 넘어 숙소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 건축가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은 3베이(bay) 방 3개짜리 아파트 등 너무나 획일화됐다"며 "50억원짜리 집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시간 단위로 쪼개 하루를 '조각 케이크'처럼 소비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서 매니저 역시 "호텔이나 전통적 숙박업체가 들어설 수 없는 인적 드문 곳, 절벽 위 아름다운 곳 등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지역 경제와 관광을 가능하게 한 구조적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역시 이 같은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용자가 여행 경험을 온라인에 공유하면서 지방의 작은 골목이나 무명 카페도 '검증된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유 건축가는 이를 "SNS에 경험을 기록하며 쌓아 올리는 '디지털 벽돌'이 새로운 관광지를 만들어 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콘텐츠와 공간만으로 관광이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본부장은 "안내·교통·숙박·음식·쇼핑 등 관광의 5대 접점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며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이러한 수용 체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유 건축가는 "인구가 적은 지역 숙소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아침 식사"라며 "아침에 빵을 살 수 있는 가게나 저녁에 즐길 거리가 없는 환경은 재방문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또 빈집을 활용한 숙박 등 새로운 관광 콘텐츠가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 매니저는 "공유숙박 관련 제도는 과거 하숙 개념에서 출발한 법을 이어 붙인 구조여서 실거주 의무 등 한국에만 있는 규제가 존재한다"며 "로컬 숙소 확산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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