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고(長考·다음 수를 두기 전 오래 고민하는 것)’해도 못 이기는 그림입니다.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실력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알파고와의 대국’이 펼쳐진 지 정확히 10년 만인 9일 이세돌 9단은 서울 당주동 포시즌스호텔에서 자신이 설계한 인공지능(AI) 바둑 애플리케이션과 대국 10분 만에 이렇게 말하고 61수만에 패배를 선언했다. 이 9단은 오후 1시 반 대국에 앞서 1시부터 한국의 AI 스타트업인 인핸스의 기술을 통해 30분만에 바둑 앱을 만들었다.
이 9단이 만들어낸 앱은 코딩없이 탄생했다. 음성으로 명령하면, 등장한 AI 에이전트들이 명령을 이해하고 구조를 짜서 이에 맞는 코드를 자동으로 생성했다. 10년 전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알파고와 정면으로 맞붙었던 바둑기사가 이제는 AI를 ‘비서’처럼 활용해 직접 AI를 만든 것이다.이 9단이 이날 직접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만든 바둑 앱은 “지금까지 아주 잘 두고 있으니 다음 수도 용기 있게 둬보라”고 조언까지 하는 여유도 보였다. 이 9단은 “너무 빠르고 어렵게 바둑을 둬서 혼란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직접 앱을 만들고 경기까지 치른 이 9단은 이제 AI가 협업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고민하 듯 이 9단은 이날 AI 바둑 앱을 만들 때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겐 19줄 바둑판은 너무 넓으니 9줄 바둑판부터 만들어달라”고 AI 에이전트에게 설명했다. 어린 이용자를 위한 교육형 바둑 AI를 떠올린 것이다.
이 9단은 “(시연이 실패해서) 민망한 자리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보시다시피 몇십 분 안 돼서 말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인간과 AI가 협업했을 때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더 놀라운 건 AI 에이전트가 보여줬던 ‘선생’으로서 교육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온톨로지’다. 온톨로지는 컴퓨터가 인간의 지식 체계와 맥락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지식 구조 지도’로, AI가 사용자의 모호한 언어 지시를 이해하고 이를 구체적인 작업 단계로 나눠 실제 컴퓨터 환경에서 실행하도록 한다. ‘컴퓨터 사용형 에이전트(CUA)’ 기술을 더해 AI가 웹 검색, 프로그램 실행, 코드 배포 같은 작업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날 바둑 앱을 만드는데 총 5개의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동했다.
이승현 인핸스 대표는 이 기술이 최근 유행하는 ‘바이브 코딩’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B2B 환경에선 단순히 코드를 잘 만드는 것보다 높은 안정성과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며 “그 맥락을 정교하게 이해시키는 데 온톨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9단도 “짧게나마 바이브 코딩을 경험해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선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며 “오늘은 사실상 내가 한 게 거의 없는데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놀라웠다”고 했다. 이 9단은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특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9단은 AI 발전 속도가 놀랍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엔 AI와 인간의 대결을 펼쳤는데, 이번엔 짧은 시간 안에 ‘알파고’ 같은 것을 내가 만들어낸 셈”이라며 “10년까지 갈 것도 없고 3~4년 전만 해도 에이전트를 활용해 AI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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