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산업으로 진로를 꿈꾸는 후배들이 종종 묻는다. 왜 위성 산업에 뛰어들었는지, 이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남들이 가지 않던 방향을 택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그 꿈의 출발점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6년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76년 만에 찾아온 핼리 혜성 뉴스를 보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혜성을 기다리며 까만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던 그 빛을 보는 순간, 나는 ‘저 너머의 세계’를 상상했다. 막연했지만 분명한 감정이었다. 언젠가 우주와 연결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르며 ‘위성을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로 바뀌었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고, 제대 후 취업을 준비할 때도 그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토익 점수를 올리고 대기업 공채를 준비했다. 당시 취업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망 직종이 아닌 오래 붙들 수 있는 질문을 택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20년 전만 해도 위성 개발은 국가 연구기관의 영역이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위성센터가 막 출범했을 때,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1948년생 박사님 한 분과 또래 직원 한 명, 셋이서 센터를 운영했다. 정부는 수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독자 위성 제작 역량을 확보하려 했고, 우리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파견됐다. 낯선 땅에 모인 여러 나라의 연구원들과 밤늦게까지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값진 훈련이었다.
그 무렵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간 우주 기업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었다. 회사도 위성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때 처음 민간 우주기업의 가능성을 실감했다. 언젠가 나도 우주 회사를 경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뒤, 한국에도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리면서 그 기회가 찾아왔다.
20년 넘게 우주 산업에 몸담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일에는 화려함보다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생각보다 ‘지구적’이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매일 별을 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막상 별 볼 시간 없이 컴퓨터 앞에서 계산을 해야 했다. 실패한 시험을 반복하며 나노 단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수십 번 계산을 되돌리기도 했다. 발사 장면은 단 몇 분이지만 준비에는 수년이 걸린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붙드는 사람만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나는 대세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붙들고 있었을 뿐이다. 다행히도 시대의 흐름이 그 질문과 만났고, 기회가 열렸다.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유망해 보이는 산업보다는 자신이 오래 견딜 수 있는 문제를 선택하라고. 산업을 만드는 것은 유행이 아니라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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