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에틸렌 제조사인 여천NCC가 전남 여수에 있는 2·3공장을 폐쇄해 생산량을 60% 줄이기로 했다. 여천NCC는 연내 롯데케미칼 여수공장과 합쳐 통합법인을 세울 계획이다. 사업 재편 1호 대상인 충남 대산단지에 이어 여천NCC까지 자구안을 마련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이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산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여천NCC는 연간 에틸렌 생산량이 각각 91만5000t, 47만t인 여수 2·3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내용의 사업 재편안을 지난 6일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공장이 멈추면 여천NCC 생산량은 기존 230만t에서 90만t가량으로 줄어든다.
여천NCC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중국발(發) 에틸렌 공급 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두 회사는 대주주 고통 분담의 일환으로 약 5000억원을 여천NCC에 수혈하기로 했다. 여천NCC가 보유한 시장성 차입금을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다. 몸집을 줄인 여천NCC는 연내 롯데케미칼 여수공장과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합작법인 지분은 한화, DL, 롯데케미칼 세 회사가 33%씩 나눠 갖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여천NCC가 140만t 규모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멈추기로 하면서 업계 자율로 결정한 감산량이 정부 감축 목표(최대 370만t)를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대산산단에서 110만t을 감축하기로 합의했고 향후 여수산단 추가 감산과 울산산단의 사업 재편이 마무리되면 석유화학 생산량이 최대 430만t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에서 통 큰 합의가 이뤄지면서 울산 등 남은 단지에서도 조속히 사업 재편안을 확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화·DL, 사업재편 합의…에틸렌 생산 연 230만→90만t
한때 연간 1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던 여천NCC 실적이 고꾸라진 것은 중국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이 플라스틱과 섬유 원료인 에틸렌 물량을 쏟아내면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가격이 급락했다.

이런 가운데 석유화학 사업재편 컨설팅을 맡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전남 여수산업단지 생산시설을 24% 줄여야 국내 석화산업이 유지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성공적으로 구조조정하려면 여천NCC와 국내 1위 석화업체인 롯데케미칼 공장이 있는 여수 산단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봤다.
하지만 사업재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해 12월 DL케미칼은 “여천NCC가 수익성을 회복하려면 연 9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용 NCC 1기를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두 회사 간 갈등이 정점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사업재편에 동참하지 않으면 응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하고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위기감이 높아진 것이 두 업체 간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충남 대산에서 HD현대와 롯데케미칼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사업장을 물적 분할한 뒤 HD현대케미칼 사업장과 합쳐 오는 9월 통합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HD현대케미칼 대주주인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신설 법인에 6000억원씩 출자하고, 지분을 5 대 5로 나눠 갖는다.
정부는 여천NCC에 ‘대산 1호 프로젝트’와 비슷한 수준의 금융 지원에 나선다. 사업재편 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은행 등 채권기관과 함께 채무 상환 유예 혜택을 주고 신규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여천NCC는 이달 말까지 금융지원 방안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금융 지원 규모는 향후 실사를 거쳐 확정한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이 합작하기로 한 만큼 에틸렌 감축 규모는 정부 목표치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정부와 석유화학업계는 에틸렌 생산량 감축 목표를 270만~370만t으로 제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종적인 감축 규모가 370만t을 넘어설 수 있다”며 “대산에 이어 여수까지 구조개편안 합의에 도달하면 울산 등 다른 지역의 사업 재편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재원/서형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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