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2>에는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다. 1라운드 대결의 주제는 ‘가장 자신 있는 요리’. 80명의 셰프 중 19명 만이 통과하는 대결인 만큼 다들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와중에, ‘서울엄마’ 우정욱 셰프는 꾸밈없는 단아한 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귀리를 넣어 지은 밥, 고기를 손수 두드려 구운 너비아니, 양지머리 뭇국과 초나물 냉채까지. 수수한 재료지만 손맛과 정성이라는 정공법으로 완성한 서울식 밥상이었다. 결과는? “맛보는 사람이 서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심사위원의 호평과 함께 합격.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서울엄마’의 활약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야무진 손끝, 포근한 마음이 담긴 요리를 선보이는 우정욱 셰프를 만났다.
<흑백요리사>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보였다.
출연 전까지 많이 고민했다. 1라운드는 붙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 들어서 괜히 주책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악플 같은 것에 초연한 성격도 아니고. 가게에 서 함께 일하는 후배들도 꼭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 최근에 매장을 확장하면서 식구들 먹일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고(웃음).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모습이 나이 들어가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심했다. 촬영장에 갔더니 후덕죽·박효남 셰프님 같은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깜짝 놀랐지만.
‘서울엄마’라는 닉네임을 받았다. 나는 ‘서울 깍쟁이’라는 닉네임을 생각했다. 그런데 사전 면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은 제작진이 ‘서울 엄마’라는 이름을 줬다. 사실 나는 아기를 갖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했던 사람이다. 평생 갖고 싶었던 엄마라는 이름을 뜻하지 않게 갖게 된 것이다. 닉네임을 받은 그날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마침 흑수저 사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다른 도전자들이 ‘엄마’로 부르는 것도 뭉클했다.
<흑백요리사>가 남긴 것은.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 의미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미션을 해내야 한다는 긴장감이 정말 짜릿했다. 훌륭한 셰프들 사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도전하는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의 요리를 볼 수 없었는데, 후에 방송을 보면서 디테일한 부분에서 감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울엄마’라는 닉네임은 내 인생을 바꿔준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요리를 해오면서 사명은 있었다. 최고의 재료, 나의 영혼을 담은 건강한 음식으로 사람들을 먹이자는 것.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엄마의 음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요즘에는 계속이 키워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주방에 서고 있다.

어릴 적 ‘엄마의 음식’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어머니는 평생 부엌에만 계셨다. 누구든 불러서 먹이는 걸 좋아하셨다. 의대를 중퇴하고 외무부 장관 비서를 하신 분인데, 그러다 보니 외국 문화를 다양하게 접할 기회가 많았다. 1960년대에 카레라이스, 돈가스를 해주셨을 정도였으니. 과자도 직접 구워주셔서 과자를 사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내가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는데, 그전까지 생일마다 친구들을 불러서 한 상을 차려주셨다. 친구들이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로. 엄마의 고모할머니가 궁 수라간에 계셨다고 하니 솜씨도 물려받으신 것 같다. 또, 남에게 베풀기도 좋아하셨다. 다른 집이 이사를 간다고 하면 종일 음식을 해서 선물했다. 다른 집에 갈 일이 있으면 약식을 한가득 만들어 가져가고.
<흑백요리사> 첫 라운드에서 서울식 반상’을 선보였다. ‘서울 음식’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왕이 먹던 궁중 음식이 반가로 내려온 것이 서울 음식이다. 담백하고, 정갈하고, 고춧가루는 잘 쓰지 않는다. 궁중 음식보다야 단순화되기는 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신선로나 석쇠 구이가 대표적인 메뉴다. 어떤 음식이든 단정하게 장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잣을 다져 올린 고명이라거나 황태로 곱게 보푸라기를 만든다거나. 시간과 정성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어릴 적 외가댁에 가면 고기를 일일이 다져서 너비아니를 정갈하게 만드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게 서울식이다.
우정욱이 선보이는 ‘서울 음식’을 정의한다면.
‘요즘 서울 사람들은 무엇을 먹느냐’ 고 물어본다면 답이 될 만한 음식이랄까. 밥도 하고 파스타도 하지만, 어떤 메뉴든 한식 터치를 넣고 장도 곁들이면서 전통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다.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은 언제 깨달았나.
초등학교 때부터 잘 먹을 줄을 알았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밥상에 생선이 올랐는데, 내가 가시를 단번에 발라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요리에 소질을 발견한 것은 대학교 때다. 우리 때는 농촌 봉사 활동을 가면 20명, 30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는데 그걸 척척 맡아서 했다. 생선 잡고, 고기 손질하고. 대학 친구들은 아직도 그 얘기를 한다.
‘대치동 요리 선생님’으로 요리의 길을 시작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단한 손맛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엄마처럼 베푸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니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느낌으로 수업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걸 좋아해서 다양한 곳에서 모은 소품으로 집을 꾸몄었는데, 그런 공간에서 맛있는 걸 먹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하다 보니 입소문이 났다. 그러다 도곡동의 한 레스토랑 운영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식당 운영에 참여하게 됐다. 요리 선생님에서 사장님이 되어보니. 내가 자신 있는 요리인 가정식으로 해보자 싶어서 주꾸미 떡볶이, 낙지 떡볶이 같은 메뉴를 선보였다. 그게 명물이 됐다. 무슨 가게를 하든 망해서 나가는 자리였는데, 몇 달 만에 매출 2억을 찍었다. 매일 울 정도로 힘들고 부담도 컸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 공간인 ‘수퍼판’을열 수 있었다. 큰 팬으로 여러 가지 요리를 선보인다는 뜻에서 슈퍼 팬(Pan), 슈퍼판이라고 지었다. 좋은 공간에서 쉬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회복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곳이다.

수퍼판의 시그니처 메뉴는.
서리태 마스카포네. 지금은 여러 곳에서 따라 하고 있지만, 나에게 의미 있는 메뉴다. 건강하면서도 획기적인 메뉴라는 자부심이 있다. 사실 <흑백요리사> 첫 라운드에서 선보이고 싶었는데, 콩을 삶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 그러지 못했다. 떡볶이도 시그니처 메뉴다. 궁중떡볶이를 살짝 비틀어서 조랭이떡과 건나물을 넣는다. 떡부터 방앗간을 수소문해서 우리 가게만을 위한 조랭이떡을 뽑아온다. 어릴 적 내 생일 때마다 엄마가 해주시던 떡 잡채를 변형한 거다. 당근, 버섯, 고기를 가지, 호박, 건나물로 바꿨지만, 양념은 엄마의 것과 같다. 외국인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메뉴다.
20년째 아이들을 후원하며 꾸준히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고 들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실습해서인지 아무래도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남다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한데, 어린이를 후원하는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알면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후원 대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후원을 종료하게 되는데, 그러면 다른 아동의 후원을 시작하는 식으로 늘 10명을 후원해왔다. 최근에는 <흑백요리사2> 출연을 기념해 조금 인원수를 늘렸다. 또, 오랫동안 연을 맺은 사회복지시설의 아이들은 수퍼판에 자주 초대해 생일 파티도 열어주고, 밥도 먹인다. 그 친구들에게는 다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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