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츠가 화재 위험으로 리콜된 배터리 셀이 탑재됐다는 사실을 숨기고 전기차를 팔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위는 메르세데스 벤츠(이하 벤츠)가 배터리 셀 정보를 은폐·누락함으로써 소비자를 사실상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벤츠 독일 본사인 메르세데스벤츠 악티엔게젤샤프트(이하 독일 본사)와 한국으로 벤츠를 독점 수입하는 총판매업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이하 벤츠코리아)에 과징금 112억3900만원을 부과하기로 전원회의에서 의결했다고 10일 밝혔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가 소비자를 어떻게 속였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두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벤츠가 2023년 6월 전기차 모델 벤츠 EQE와 EQS에 파라시스 배터리 셀을 탑재했지만, 이를 누락하고 마치 닝더스다이(CATL) 배터리 셀이 탑재된 것처럼 기재한 판매 지침을 제작·배포해 소비자를 속인 것으로 판단했다.
파라시스는 EQE가 한국에 출시되기 직전인 2021년 3월 중국에서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된 이력이 있다.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 중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것은 EQE와 EQS뿐이다.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는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판매 지침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벤츠가) CATL을 선택한 이유", "업계 최고의 기술력",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등의 표현으로 CATL 배터리 셀의 우수성과 장점을 기술했다. 또한 딜러사에는 배터리 셀 제조사 관련 소비자 질의에는 CATL 배터리 셀의 우수성을 강조하라고 안내했다.
이에 따라 벤츠 국내 딜러사들은 파라시스 배터리 셀 탑재 사실을 전혀 모른 채 CATL 셀이 사용됐다고 설명했으며 소비자는 이를 믿고 차를 구매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벤츠의 이런 행위가 위계(거짓으로 꾸민 계책)를 사용해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부당하게 유인한 것이라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벤츠의 이러한 행위는 2024년 8월 13일 차종별 배터리 셀 제조사를 공개하기 전날까지 이어졌다. 그해 8월 1일 인천 청라지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파라시스 셀 탑재 벤츠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논란이 벌어지고서야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그간 벤츠가 국내에서 판매한 전기차 가운데 파라시스 배터리 셀을 탑재한 차량은 약 3000대에 달한다. 판매 금액으로는 2810억원 규모인 것으로 공정위는 집계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고객 유인 행위를 포함한 불공정거래행위에 관련 매출액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배터리 셀 제조사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계가 깊은 정보라는 점을 고려해 법률상 최대 기준율을 적용해 과징금을 산정했다.
전원회의에서 이 사건을 주심으로서 심의한 황원철 공정위 상임위원은 "이번 조치는 자동차 제조·판매업자가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누락·은폐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정위 결정은 소비자들이 벤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근거도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에 CATL 배터리 셀이 탑재된 것으로 오인해 벤츠 전기차를 구매했다는 소비자 민원도 90건 넘게 접수돼 있다.
벤츠코리아가 판매지침 작성 과정에서 딜러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약 3분의 1은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CATL은 세계 배터리 셀 점유율 1위(2024년 기준) 사업자이며 점유율·인지도·기술력 등에서 파라시스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파라시스의 시장 점유율 1∼2% 정도로 추정된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가 판매 지침의 주요 내용을 독일 본사에 모두 사전 보고했다며 독일 본사가 배터리 관련 내용 등의 보완을 요청하거나 이 지침을 우수 사례로 선정해 다른 나라에도 소개·전파하는 등 불법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