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은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라크, 카타르, 오만 등 세계 유수의 석유 및 가스 산출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세계경제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다. 이번 전쟁은 세계경제 및 각 산업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줄 수 있으며, 그 파급효과가 구조적 변화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 집권과 함께 다소 후퇴한 탈석유, 탈화석연료화를 위한 그린 이노베이션이 다시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월 ‘소재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향후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을 통한 일본 소재산업의 구조 전환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의 철강, 화학, 종이, 시멘트, 유리 등의 소재산업은 특수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고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의 범용 합성수지 등 저부가가치 분야에서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소재산업의 구조조정과 탈탄소화를 함께 지원하는 정책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일본 정부는 콤비나트(석유화학단지 등) 부지나 지역별로 편재된 탈탄소 전원을 핵심적인 지원 대상으로 삼아서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 창출을 목표로 하는 ‘GX 전략 지역 제도’를 신설하고 있다. 지자체와 기업이 구조 전환 계획을 수립·협력하고, 국가가 해당 지역을 선정해 지원하고 규제·제도 개혁을 일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지역에 기반한 탈탄소 전원을 활용하는 사업자도 지원한다. 탈탄소 공단화를 지향하면서 공간을 절약해 지역 내 전력, 통신 인프라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존 부지에 새 데이터센터도 유치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재 기업의 설비 전환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면서 새로운 공정 기술의 개발, 도입을 통해 화석연료 등의 수입 억제 효과도 높일 방침이다.
일례로 일본 정부는 이산화탄소 등을 원료로 활용한 플라스틱 제조 기술 개발 등에 지원금 1540억 엔을 지출하고 있다. 오사카소다 주식회사의 경우 바이오매스 유래 원료의 도입과 함께 CO₂ 프리 전력 도입을 통해 에피클로로히드린(EP)의 저탄소화를 달성하는 사업에 30억 엔을 투자하면서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금도 받고 있다. EP는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에 필수적인 중간 원료이며, 이번 지원 사업을 통해 CO₂를 감축하는 동시에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멘트 산업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그린 이노베이션 기금을 활용해 각 기업의 탈탄소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신공법을 보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스미토모 오사카 시멘트는 폐석고보드·소각재 등에서 칼슘을 추출해 CO₂와 반응시켜 인공 석회석을 만드는 듀얼 리사이클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는 천연 석회석을 대체하고 다른 산업에도 활용될 수 있다. 초기 비용은 높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과 리사이클에 대한 지원 제도로 경제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제지 산업에서 일본 정부는 바이오리파이너리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제지는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공장에서 석탄 보일러를 중단하고 블랙리커(목재 가공 부산물) 보일러로 교체해 에너지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동시에 목재 펄프를 활용해 바이오에탄올·바이오수지·셀룰로오스 나노파이버 등 다양한 바이오 제품을 개발하며 화학산업과 연계해 새로운 성장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를 보면 일본과 같이 구조조정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의 소재 산업에 대해서도 민관협력 형태로 지역 차원에서 탈화석연료 신기술에 기초한 신공법을 개발하면서 처음부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바이오화학, 탄소 자원화 등의 신기술이 처음부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 기능성 제품과 연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바이오 공법, 탄소 활용 공법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기술개발 체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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