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는 변동성이 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했다가 90달러대로 떨어졌다.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WTI 선물 근월물 가격은 배럴당 94.77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인 지난달 28일(배럴당 67.02달러)보다 41.41% 높은 수준이다. 미·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석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20~25%가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여파다.
특히 지난 9일 장중 한때 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19.4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란의 차기 최고지도자로 미국에 강경하게 대적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즈타파 하메네이가 선출되면서다. 그는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마네이 최고지도자의 차남이다.
이에 더해 석유 수출길이 막히면서 유전에서 뽑아낸 석유를 저장할 탱크가 부족해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까지 감산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국제 유가를 밀어 올렸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의 재무장관은 국제 유가 급등에 대응해 전략비축유 방출 등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후 국제 유가가 안정될 조짐을 보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의 조기 종식 가능성을 시사해 국제 유가를 배럴당 80달러대까지 찍어 눌렀다.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자극하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앞선 미국의 대선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물가 급등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한 바 있다.
국제 유가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게 미국 정권에 치명적이기에, 걸프 국가들이 미·이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국제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란 분석이 눈길을 끈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전쟁 발생 이전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이었다면 미국이 이란을 대규모로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걸프 국가들은 낮은 유가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며 “고유가로 걸프 국가들의 지정학적 중요도가 높아졌을 때 국가 안보가 강화되고, 물류·관광·정보기술(IT) 등 서비스·첨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결론을 걸프 국가들이 내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반대로 전쟁 종료 이후 석유 수요는 단기적으로 급증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세계 각국이 중동지역에서 또다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때를 대비하려는 행보를 보일 수 있어서다. 당장 미국의 전략비축유 재고도 4억1500만 배럴로, 최대 비축 용량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이충재 연구원은 “미·이란 전쟁 종결 후에도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75달러가 아니라 90~110달러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제 유가 고공행진으로 세계 각국이 에너지 안보 확보에 나서는 데 따른 수혜 업종에 관심을 두라고 한국투자증권은 조언했다. 신규 유전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수요 확대는 국내 2차전지 산업에도 호재로 분석됐다. 중국산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의존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커질 가능성 때문이다.
조선주도 유망할 수 있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을 조선업종에 대한 비중확대 의견의 근거로 제시한다”며 “중장기적으로 더 큰 수혜를 받을 종목은 부유식 LNG 생산·하역·저장 설비(FLNG) 분야에 강점이 있는 삼성중공업, 부유식 LNG 터미널(FSRU) 테마의 HD현대마린솔루션, 수에즈막스급(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최대 크기) 유조선 테마의 대한조선 등”이라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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