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역만리 타국에서 시작한 삶, 그리고 예상치 못한 두 번의 폐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조 씨는 수십 년간 건설 현장의 먼지와 유해 물질 속에서 건설일용직 노동자로 묵묵히 생계를 이어왔다. 2018년, 평소와 다름없던 보건소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고 정밀 검사 결과 '비소세포폐암 1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즉시 수술대에 올랐으나 회복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오른쪽 폐의 염증과 폐렴이 겹치며 1년 가까이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간신히 기운을 차릴 무렵, 암은 다시 그를 찾아왔다. 1년 뒤 왼쪽 폐에서 새로운 결절이 발견되었고 2023년에는 결국 오른쪽 폐에서 암이 재발하며 '비소세포폐암 3기' 확진을 받았다. 반복되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 그리고 이어진 면역항암치료까지. 부작용 탓에 체력은 바닥났고 정신적인 고통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의 끝에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색소폰' 소리와 든든한 '산재 보상'이라는 현실적인 버팀목이었다.
Q. 처음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타국에서의 삶이 참 막막하셨을 것 같습니다.
"설마 내가 암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한국에 와서 가족들 뒷바라지하며 건설 현장에서 거칠게 살아왔지만, 몸 하나는 자신 있었거든요. 1기 진단을 받았을 땐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이제 우리 가족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겨우 수술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3기로 재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이미 치료의 고통을 아니까 그 길을 다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저를 믿고 견뎌준 아내를 보며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묶었습니다."
Q. 재발 이후 치료 과정이 무척 고되셨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치료들을 견뎌내셨나요?
"처음 1기 때는 수술로 암세포를 떼어내는 데 집중했지만, 3기 재발 이후에는 싸움의 차원이 달라지더군요. 항암 치료 6차와 방사선 치료 20회를 연달아 진행했습니다. 그 후에는 면역항암치료도 시작했죠. 사실 면역항암제는 부작용이 너무 커서 계획했던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날 때마다 정말 힘들었지만, 의료진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이어가려 노력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긴 시험처럼 느껴지더군요."
Q. 그런 힘겨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신 노하우가 있으시다고요.
"제 마음을 다스려준 건 색소폰이었어요. 예전부터 취미로 불던 악기인데, 병실에서도 놓지 않았죠. 의사 선생님께서도 색소폰을 부는 게 폐활량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격려해 주셨어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기자'는 마음으로 욕심내지 않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려 노력했어요. 스스로를 너무 가엾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제 가장 큰 치료법이었습니다."
Q. 치료 과정이 길어지면서 경제적인 부분도 큰 고민이셨을 텐데,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항암치료가 반복될수록 통장 잔고는 비어가고 마음은 조급해졌죠. 그러다 '건설일용직인 나 같은 사람도 산재가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외국인이라 더 막막했죠. 그런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산재 승인을 받고 나니 정말 기적 같았습니다. 수십 년간 건설 현장에서 마신 분진과 유해 물질들이 제 병의 원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어요. 매달 나오는 보상금 덕분에 병원비 걱정 없이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재는 저에게 단순한 돈이 아니라,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증서'였습니다."
조 씨는 현재 꾸준한 관리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제2의 인생을 연주하고 있다. 조 씨의 산재 사건을 성공적으로 이끈 노무법인 폐의 정현일 노무사는 "폐암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걸친 유해 환경 노출이 원인이 되는 직업성 질병"이라며, "특히 건설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근무지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직업력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고 밝혔다.
이어 정 노무사는 "외국인 근로자나 일용직이라 할지라도 국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분진, 석면 등에 노출되었다면 충분히 산재 승인이 가능하다. 산재보상을 통해 치료비 뿐 아니라 휴업급여 등을 받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으므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망설이는 폐암 환자분들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전문적인 법률 상담을 받아보길 권한다"라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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