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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려면

입력 2026-03-11 17:28   수정 2026-03-12 00:06

이번 정부가 내세운 핵심 금융정책은 ‘생산적 금융’이다. 정책 구호로는 또렷하지만,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다소 모호하다. 학계에서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 실질이다.

경제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뜻은 분명해 보인다. 금융의 중개 기능을 강화해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겉으로 보면 답은 쉬워 보인다. 선진국일수록 금융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금융이 선진국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금융 수요를 창출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과의 방향이다. 인과관계가 어떤 방향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연구가 쌓이면서 경제학자 사이에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 성장의 근본 동력은 실물경제에 있다. 하지만 금융도 제 역할을 하면 성장을 도울 수 있다. 다만 앞장서서 혁신을 창출하는 성장의 근본 동력이라기보다는 성장 속도를 높이는 윤활유에 가깝다.

미국의 매그니피센트7 같은 빅테크의 성공을 금융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배경에는 유연한 노동시장, 강한 대학과 연구 생태계, 정부의 기술 지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벤처캐피털과 자본시장은 그런 기반 위에서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유망한 기업을 선별해 자금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반면 런던이라는 세계적 금융 허브를 가진 영국이 미국만큼 빅테크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금융이 혁신 생태계를 뒷받침할 수는 있어도 생태계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들이 경고하듯 금융의 양적 팽창이 반드시 성장을 촉진하지는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기는커녕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금융의 규모가 아니라 배분의 질이다. 자금이 어디에 어떤 기준으로 흘러가느냐를 잘 판단해야 한다. 가계와 부동산으로 몰린 신용은 자산 가격을 부풀려 경기 변동과 금융 불안을 키우기 쉽다. 반면 혁신기업과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향한 자금은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생산적 금융의 핵심은 가계에서 기업으로 자금을 기계적으로 옮기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기업이 더 유망한지, 어떤 기술이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할지 금융이 가려낼 수 있느냐다. 금융의 핵심 기능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그 출발점은 리스크를 제대로 읽는 능력이다. 금융의 실력은 미래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기업을 가려내고, 그 리스크를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는 데 있다. 하지만 담보와 보증에 의존해 온 우리 금융기관은 기업의 사업성이나 미래 현금흐름을 평가할 유인을 잃었다. 판단하지 않아도 손실이 크지 않은 구조에서 금융은 늘 익숙한 쪽으로 기울었고, 자금은 부동산 담보나 정부 보증이 있는 곳으로 흘렀다. 이처럼 금융이 위험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금융은 혁신을 뒷받침하지 못하며 성장도 정체된다.

생산적 금융이 작동하려면 순서가 분명해야 한다. 먼저 혁신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위에서 금융이 움직여 혁신과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자금이 흘러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자금의 흐름을 일일이 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환경에서는 민간 금융이 굳이 리스크 판단 역량을 키울 유인이 없다. 금융이 현금흐름과 사업성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 때 자금은 시장 원리를 통해 가장 생산적인 곳으로 흐른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자금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부문이 연명하지 않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자원이 낡은 곳에 묶여 있는 한 새로운 곳으로 흐를 수 없다.

생산적 금융을 만드는 것은 금융정책만이 아니다. 정부는 혁신이 일어날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고, 금융은 혁신기업의 리스크를 읽어낼 능력을 갖춰야 한다. 생산적 금융은 정부가 길을 정하는 게 아닌, 금융이 역량을 키워 위험을 제대로 가격에 반영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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