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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공정에서 공감으로

입력 2026-03-11 18:01   수정 2026-03-12 00:04

조직에는 ‘20:80 법칙’으로도 불리는 파레토 법칙이 있다. 우수 인력 20%를 추리면 그 안에서 다시 구분이 생긴다고 한다. 20년 전에는 내가 20%에 속한다고 믿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나와 같은 파견 직원에 대한 기대와 요구 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80%에 속한 느낌을 받았다. 경계선 밖에 선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 특정 인적 자원을 중심에 두었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조직원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관리자의 책무임을 깨달았다.

이제 공정을 중시하는 Z세대가 사회 곳곳에 진출해 있다. 승진과 평가에 더욱 민감하고 충분한 설명을 요구하는 세대다. 공공기관에 와서 평가 시스템을 손보고 인재경영, 투명경영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라는 한계 속에서 인사와 조직 혁신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만족할 만큼 공정하기란 어렵다. 특히 공공 영역은 개인별 성과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어 수시 기록과 면담으로 보완해야 한다. 국제기구는 자리별로 공고를 내고 적합한 사람을 뽑기 때문에 성과 평가에 대한 부담이 작다. 우리처럼 일시에 직원 전체의 순위를 매겨서 성과급이나 승진에 연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팀장급 이상의 업무 가운데 직원 인사(HR)의 비중이 상당하다. 실제 평가자와 면담했을 때 나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기록에 놀란 적이 있다. 서구에는 학교에서부터 관찰, 기록, 예측, 환류의 전통이 있다. 독일 계통 교육 체계에서는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학생의 진로를 정한다. 직업학교에 갈 것인지, 인문계로 가 학문의 길을 택할지는 점수가 아니라 교사의 관찰에 큰 영향을 받는다. 국제 바칼로레아(IB)의 경우에 핵심은 성적 평가 체계와 예측 모형이다. 국내에서 대입 수시 전형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올해 초 직원들을 대상으로 평가 관련 이의 신청을 받아 보니 서면 피드백과 수치로 적은 점수가 다르다는 불만이 가장 많았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이슈 등을 감안하면 말과 글로 남기는 평가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직무 중심으로 평가할 환경을 갖추지 못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공 부문도 직위 분류제의 전면 도입, 즉 자리를 특정해 채용하고 계약을 연장해 가는 방식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공정은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공정에 머물기보다 공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조직뿐 아니라 사회 역시 20%와 80%를 모두 아울러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상대방과 내가, 이웃과 우리 가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우선이다. 경쟁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협력과 연대의 미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가며 직면한 시대적 과제들은 혼자 풀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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