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 직후 '향후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더라도, 근로자가 권리 포기의 법적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면 미지급 퇴직금을 전액 청구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은 근로자 A씨가 B법인을 상대로 낸 미지급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사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사측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A씨는 B법인에서 3년가량 일한 뒤 퇴사하며 사측이 내민 정산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는 "향후 고용 및 근로관계에 관한 어떠한 민사소송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부제소합의' 조항이 담겼다. 이후 A씨는 국가가 사업주 대신 체불 임금을 내주는 간이대지급금 제도를 통해 700만원을 수령했다. 하지만 본래 받아야 할 전체 퇴직금(약 1230만원)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이에 A씨는 공단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사측은 부제소합의를 근거로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며 이미 A씨가 퇴직금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맞섰다.
하지만 법원은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조항이 포기 대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합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합의 당시 A씨가 대지급금 700만원만으로 퇴직금 전액이 충당되지 않을 것을 예측했다고 볼 증거도 없고, 의미를 모른 채 서명한 합의서만으로는 남은 퇴직금 청구권까지 명확히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사건을 대리한 심희정 공단 소속 변호사는 "사용자가 형식적인 합의서를 앞세워 사실상 잔여 임금과 퇴직금 청구권을 옥죄려는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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