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에 방위산업 관련 장비를 불법 수출한 혐의로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가 또 압수수색을 받았다. 불법 수출을 감추기 위해 허위 공시를 하고, 러시아 업체와 이면 계약을 한 혐의도 받는다. 방산업계에선 제3국을 통한 방산 기술의 위법·편법 수출 관행이 산업계 곳곳에 확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2월 27일자 A10면 참조
A사는 다른 업체와 달리 수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허위 공시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러시아 배터리 제조업체 B사에 배터리 장비 300억원어치를 공급하는 계약을 중도 변경하는 내용의 정정 공시를 했다. 수년 전 계약한 금액의 일부만 받고 계약이 종료됐다고 알렸다. 처음 공시 내용에 없던 계약 상대방(러시아 2차전지 업체)도 공시했다. 계약 기간 종료일도 변경됐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B사와 이면 계약을 한 뒤 중국과 튀르키예 등을 거쳐 나머지 180억원어치 장비를 우회 수출했다. 수출 대금은 금융당국 추적이 어려운 위안화로 받았다. 관계당국은 이런 허위 공시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진이 고의로 허위 공시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 상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배터리 업체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러시아 수출을 감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불법 수출이 확인되면 내용에 따라 일정 기간 수출입 제한 등 행정 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A사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관세청 조사를 받는 배터리 업체의 사업 영역은 다양하다. A사는 배터리 기초 물질을 일정 비율로 섞는 믹싱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에 제품을 공급한다.
지난달 압수수색당한 국내 배터리 회사 네 곳은 코터(금속박에 활물질을 코팅한 뒤 건조하는 기기)와 롤프레스(전극 두께를 더 균일하게 압축하는 장비) 등 배터리 핵심 장비를 생산한다. 이들 네 곳의 연간 매출은 총 2조원에 육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에 불법으로 설비를 수출한 기업이 10여 개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오간다”며 “당국 공조 수사가 진행되면 조사 대상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종환/김대훈 기자 won04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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