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 개나리보다 먼저 새로운 계절에 손 흔드는 것은 곳곳마다 걸린 입학식 현수막이다.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생애 첫 등교를 하는 꼬마의 긴장 가득한 볼, 갓 어린이를 졸업한 청소년의 힘 들어간 어깨, 처음 어른을 시작하는 대학 새내기의 자유분방한 걸음이 하나같이 푸르다. 온 세상이 3월의 시작에 보내는 환영 인사는 꽃망울이 맺히면 꽃이 피는 것처럼 ‘성장이 예견된 출발’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다.삶의 어느 시점까지 성장이란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가질 수 있는 경험이다. 밥만 먹어도 자라고 잠만 자도 자란다. 울어도 자라고 넘어져도 자라고 가만히 있어도 자란다. 매일의 세상엔 늘 반드시 새로운 것이 있고, 몸이 자라는 동안 마음에는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할 수 없던 것을 해내는 뿌듯함이 자란다. 내가 뭘 어떻게 해도 성장한다는 사실은 인생 초반에 양손 가득 주어지는 입학 선물 같다.
반면 더 이상 봄의 입학식을 치르지 않는 어른의 성장은 때맞춰 자동으로 갱신되지 않는다. 일상은 새로울 일 없이 반복되고, 자원은 늘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나뿐 아니라 자녀, 후배, 팀원 등 주변의 성장을 돌보아야 하는 어른에게 성장이란 경험이 아닌 전략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에 가깝다.
이렇게 ‘과제가 되어버린 성장’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이나 뿌듯함보다는 불안과 압박감을 키운다. 종종 떠오르는 ‘내가 왜 꼭 성장해야 하느냐’는 피로감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강요에 대한 저항이다.
한편 다행인 것은 어른도 때로 자연히 자란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울며 배우고 넘어지며 해낸다. 어른은 애쓰지 않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성장을 성취 혹은 성공과 동일시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해본 일과 알고 있는 것이 늘어나며 새로운 성취가 줄고, 올라가는 삶의 난도만큼 쌓이는 성공의 수가 줄어들며 ‘경험을 통한 배움’이라는 자람의 기쁨을 종종 잊는다.
아이는 몰랐던 바깥세상을 발견하며 자란다면, 어른은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며 자란다. ‘앎’에 대한 탐구가 어린 가슴을 키운다면, ‘모름’에 대한 수용은 어른의 마음을 한 뼘 자라게 한다. 내가 다 안다는 생각만큼 지치고 무기력한 것은 없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전부 알 수는 없는 타인의 사정이, 저마다 자신의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수용하는 순간마다 어른은 파릇하게 자란다.
<백 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고 썼다. 류시화 시인은 ‘얼마나 느끼고 감동하며 살았는지’가 인생의 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세상이 현수막을 내걸어주지 않는다고 나의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다가오는 봄기운을 빌려 압박감은 잠시 내려두고 자라나는 나 자신에게 기대와 응원을 선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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