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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北의 '권총 정치'

입력 2026-03-13 17:40   수정 2026-03-14 00:22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 권력과 세속 군주권을 ‘두 자루의 칼’에 비유한 양검론(兩劍論)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유럽 각국 군주들이 “세속의 칼은 영적인 칼에 종속되지 않는다”며 자기 몫을 챙기는 과정에서 정·교가 분리된 근대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칼과 관련한 구절을 인용해 권력을 검이라는 무기로 선명하게 시각화한 점이 중세 대중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세습통치를 정당화하는 서사로 널리 활용된 것이 ‘두 자루의 권총’이다.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이 1926년 14세 소년 김일성에게 벨기에제 ‘FN M1900’으로 추정되는 권총 두 자루를 남겼고, 김일성이 이 총을 들고 항일 투쟁에 나섰다는 게 북한의 ‘건국 신화’다. 김일성은 “혁명은 총대(총기류)에 의해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총대철학’을 표방하며 권력을 다졌다.

폐쇄국가 북한에서 두 자루의 권총은 곧 세습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상징으로 전환됐다. 6·25전쟁 당시 김일성이 “이 권총이 혁명의 승리를 담보한다”며 11세에 불과한 김정일에게 총을 물려줬다는 스토리가 덧붙여졌다. 권총 모양 퍼레이드가 펼쳐진 2022년 평양 열병식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두 자루 권총에서 시작해 그 어떤 강적도 전율케 하는 무적강군으로 자라났다”고 북한군을 부추기며 ‘권총 신화’를 이어갔다.

그제 북한 선전 매체들이 실내사격장에서 김정은이 딸인 김주애와 나란히 권총 사격을 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서사의 ‘판박이’로 10대 소녀의 손에 권총을 쥐여 주며 권력 세습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이 이번에 김씨 부녀가 방아쇠를 당겼다고 자랑하는 최신 권총은 체코제 CZ75 권총을 복제한 ‘백두산 권총’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최신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는 선전의 뒤편에는 아직 어린 아이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북한 정권의 절박함이 엿보인다. 권력 세습을 위해 권총 신화에 기대는 모습은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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