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한국 초연의 막을 올린 '재키'는 발레의 우아한 수직성을 해부하고 그 자리에 곤충의 절지동작과 클럽의 원초적 비트를 이식했다. 남녀 구분 없이 전원이 입은 스킨톤의 의상은 무대 위 서사를 지우고 오직 근육의 떨림과 관절의 꺾임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효과를 주면서, 기괴한 익명성에 힘을 보탰다. 이 작품은 2023년 네덜란드댄스시어터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당시에도 관객의 호불호가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안무의 핵심은 지독할 정도로 집요한 '드미 포인(demi-pointe)'과 '부레(bourree)'의 변주에 있었다. 무용수들은 기형적인 자세로 무대를 가로지른다. 고전 발레에선 허용되지 않는, 구부러진 무릎은 인간의 직립 보행보다는 포식자를 경계하는 곤충의 발걸음이나 보이지 않는 주파수에 반응하는 외계인처럼 보였다. 무용수들은 하나의 신경계로 연결된 군단처럼 움직였다.

흩어지고 모였다 반복하는 무용수들은 어느새 4행 4열의 대열로 늘어서 같은 동작을 이어갔다. 왼쪽 가장 뒷편 한 여성 무용수가 한쪽 팔을 스스로 감싸쥔 채 박자를 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의 춤은 상처를 부여잡고 공동체의 속도에 발맞추려 애쓰는 고통스러운 모습처럼 보였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호러 영화 <미드소마>(2018) 속 주인공 대니가 스웨덴의 폐쇄적 공동체 '호르가'의 기이한 의식 속에 겉돌며 자신의 비극을 감당하는 순간이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이 이질적인 무용수가 결국 집단의 리듬에 완전히 포섭되는 찰나에 있었다. 스스로 옥죄던 팔을 풀고 다른 무용수들과 완벽한 행과 열을 맞추며 춤출 때, 그의 상처는 치유되는 것처럼 비춰진다.

다만 이는 따스한 위로라기보다 공동체가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며 개인의 비명을 집어삼키는 모양새다. 이처럼 샤론 에얄의 안무는 개인의 고유성을 거대한 기계적 동기화 속에 매몰시켜 버린다. 고립된 자가 느끼는 공포보다 집단의 일원이 돼 개별성을 상실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을 노린 것 같아 기묘한 감정을 안긴다.
어떠한 무대 장치도 없이 조명의 밝고 어두움만으로 이뤄진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관객에게 어떤 극적인 보상이나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에얄은 해소되지 않는 긴장을 관객에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전자음악이 내뱉는 단조롭고 강렬한 비트 위 처음의 압도적인 에너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에게 '이것이 전부였나?'라는 당혹감을 안긴다. 공연은 오는 22일까지.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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