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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와 국제분쟁서 완승한 정부, 3200억 지켰다

입력 2026-03-15 17:52   수정 2026-03-16 00:34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홀딩스가 제기한 32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에서 한국 정부가 완승을 거뒀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쉰들러를 차별하지 않았으므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주주와 회사 간 분쟁에 정부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KCC 지분전서 시작된 20년 악연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전날 쉰들러의 청구를 기각했다. 쉰들러가 중재 절차에서 제기한 32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는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송 비용 약 96억원도 쉰들러로부터 돌려받게 됐다.

세계 2위권 승강기 업체인 쉰들러와 한국의 악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당시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현 회장의 ‘백기사’로 등장한 쉰들러는 2006년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매입해 2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쉰들러는 현 회장과 지속적으로 경영권 갈등을 벌였다. 2013년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969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대해 “현 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을 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 지분 매입을 대가로 파생상품 계약을 맺자 7000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도 제기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5~2016년 20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고 820억원 규모 콜옵션도 행사했다.

쉰들러는 2018년 10월 정식으로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다. 한국·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파생상품 계약과 유상증자, 콜옵션 매각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에 수차례 민원과 신고를 냈지만 적절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현 회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쉰들러를 차별 대우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쉰들러의 최초 청구액은 약 4900억원이었다. 이후 중재 절차를 거쳐 3250억원으로 확정됐다.
◇완승 거둔 한국 정부
8년간 이어진 분쟁에서 중재판정부는 정부 손을 들어줬다. 한국 공정위와 금감원, 금융위의 조치가 자의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은 합법적인 권한 범위 내에서 충분한 조사와 심사를 거쳐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세 기관의 판단이 적법한 만큼 정부가 투자협정을 위반하지 않았고 국제법상 국가 책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쉰들러를 차별하지 않았다고 봤다. 법무부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정부가 현대그룹 측을 부당하게 비호하거나 악의를 갖고 규제 권한을 남용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떠한 객관적 증거도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투자협정상 투자자 보호 의무도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중재판정부는 투자협정상 정부가 투자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보호·안전 의무는 물리적 보호에 국한되며 법적 보호까지 확대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설령 법적 보호까지 포함된다고 해도 이미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충분한 법적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쉰들러는 중재가 진행되던 2023년 현 회장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서 1700억원 배상 판결을 대법원에서 확정받았다.

법무부가 ISDS에서 본안 심리까지 진행된 사건에서 처음부터 전부 승소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정부는 중국인 투자자 민모씨가 투자자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제기한 ISDS 사건에서도 2024년 전부 승소했다.

법무부는 쉰들러 측의 취소 소송은 물론 판정 정정이나 보충 신청에도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소송 비용 환수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 투자자가 사적 분쟁을 국제법상 국가 책임으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끌어들여 천문학적 배상금을 받으려는 시도를 차단했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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