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원유인 두바이유 가격 시스템이 망가졌다. 두바이유 벤치마크 가격을 구성하는 주요 유종인 두바이유와 오만유의 가격 상승 폭이 다른 원유보다 커지면서다. 두바이유가 가격 기능을 사실상 상실해 중동산 원유 비중이 70%에 달하는 한국 정유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7일 글로벌 원자재 벤치마크 산정 업체 S&P글로벌플래츠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날 현물 두바이유는 두바이유 선물 상품(장외 파생 상품 기준)보다 배럴당 56달러 비싸게 거래됐다. 전쟁 전인 지난달 평균 프리미엄(웃돈)이 90센트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60배 이상 급등했다. 지난 13일 기준 현물 오만유의 선물 대비 프리미엄도 배럴당 51달러로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두바이유 벤치마크 가격을 구성하는 다른 원유 중 하나인 무르반유 상승 폭은 덜했다. 무르반유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산이다. 16일 기준 5월 인도분 무르반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111.76달러였다. 같은 시기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53달러에 달했다. 같은 중동 원유인데도 가격이 배럴당 40달러 이상 벌어진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상 벤치마크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원자재 시장에서 “두바이유가 가격표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두바이유 벤치마크 가격은 두바이유, 오만유, 어퍼자쿰유, 알샤힌유, 무르반유 등 5개 유종의 호가, 거래량, 품질 차이를 따져 관련 전문업체인 S&P글로벌코모디티인사이트가 산정한다.
두바이유 벤치마크가 붕괴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호르무즈해협 봉쇄다. 봉쇄 이후 주요 해운사들이 운항을 중단해 원유 거래 자체가 급감했다. 글로벌 에너지 전문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이달 중동 지역의 아시아행 원유 수출량은 하루 1166만5000배럴로 떨어졌다. 작년 동기보다 32% 감소했다.
이런 영향으로 두바이유 벤치마크 가격을 산정하는 S&P글로벌은 주요 유종 거래를 일부 중단했다. 해당 지표의 대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래도 급격히 줄었다. 벤치마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수 시장 참여자가 가격을 형성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거래에선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만 매수자로 나서면서 가격 왜곡 현상이 심화했다.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면 국내 정유산업 수익성은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정유업계는 이미 부담이 많이 늘어났다. 정부가 13일부터 2주간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소비자가격 인상은 억제됐다. 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한 정유사 손실은 커지고 있다.
헤지(위험 회피) 기능도 악화했다. 보통 정유사는 현물 조달 가격과 선물·스와프 가격을 맞춰 위험을 줄인다. 하지만 지금처럼 현물과 선물 가격, 브렌트유 등 다른 원유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헤지 효과가 떨어진다. 가격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전망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한 달 이내 해협이 정상화되면 두바이유 벤치마크 시스템은 쉽게 회복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중동 분쟁으로 아시아 국가의 원유 조달처는 더 분산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원유 조달에서 브라질, 서아프리카, 미국 등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두바이유 벤치마크 구성에서 다른 유종의 역할이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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