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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노조 권력의 연전연승을 보는 불안감

입력 2026-03-17 17:44   수정 2026-03-18 00:10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이상과 질서를 좋은 쪽으로 정의하면 ‘노동자 직접 민주주의’다. 레닌은 주저 <국가와 혁명>에서 미래 이상사회의 모습으로 ‘노동자 공동체’를 제시했다. ‘생산 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세계 첫 ‘노동자 계급 혁명’은 기대를 배반했다.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가 권력을 분점한 체제는 혼란과 야만으로 치달았다. 소련 최종 붕괴(1999년)는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이 작동 불가능하다는 분명한 증좌다.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노동 계급의 지배’를 포기하고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파트너십 구축으로 급선회한 이유다.

그렇게 막을 내린 ‘생산 과정에 대한 노동의 통제’ 시도가 이즈음 한국에서 부활 중이다. 거대 노조의 ‘소원 수리’가 그대로 입법화하는 일이 잦다. 노동이사제, 주 52시간 강제법 등이 그런 사례다.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노동권 과보호 입법인 노란봉투법도 발효됐다. 이제 원청 경영자는 하청 근로자와 단체협상을 하고, 불법 쟁의로 입은 손실도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할 판이다. 특정 사업을 접거나 첨단 설비 반입을 결단할 때도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된다.

한국 노동 권력의 지배 권력화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SNS에 올린 게 2020년 5월로 벌써 6년 전 일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해 3~6월에만 대통령, 총리, 서울시장, 경제부총리,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부 장관, 금융위원장과 회동했다.

엊그제 한국노총 80주년 기념식 분위기도 막강한 노동 권력의 현주소를 확인시켰다. 국회의장, 여야 대표 등이 빼곡히 입장한 행사장 연단에서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의로운 사회 대전환 주도’를 역설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대조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노사 운동장이 기울다 못해 뒤집어졌음을 보여주는 장면도 흔하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각각 ‘노정 협의체’를 구성했다. 사측을 배제한 채 장관, 차관, 실국장이 매월 거대 노조 간부와 급을 맞춘 자리를 만들어 정책을 조율하는 초유의 장면을 보게 됐다.

한국은 노조의 직장(생산라인) 점거를 허용하고, 파업 시 대체근로를 불허하는 유일한 나라다. 그것도 모자란지 이제 국회는 변호사·노무사도 헷갈려하는 모호한 친노조법을 잇달아 만들어내고 있다. 행정부는 거대 노조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후속 규정 작업으로 격하게 맞장구를 치고 있다.

고비마다 친노조 판결로 일시에 공기를 바꿔버리는 사법부도 문제다. 노란봉투법 입법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준 쌍용차 ‘옥쇄 파업’ 면죄부 재판이 잘 보여줬다. ‘점거농성을 풀라’는 법원 명령까지 거부했는데도 김명수 대법원은 손해배상을 명령한 원심을 뒤집었다. ‘경찰의 위법한 진압에 맞선 대응 폭력은 합법’이라고 했다. 경찰이 헬기로 시위대에 프로펠러 하강풍을 쏘고, 최루액을 공중 살포한 행위를 불법(장비 사용 규칙 위반) 근거로 제시했지만 궁색하다. 전교조, 불법 파견, 통상임금 재판에서도 노조는 ‘진보 판사’들의 활약에 힘입어 연전연승했다. 그렇게 바뀐 판례가 노동법 체계 전반을 뒤흔들었다.

‘노동자가 대우받아야 한다’는 명제는 전적으로 옳은 지향이다. 하지만 노동 권력의 질주는 다른 얘기다. 필패의 길이다. 옛 소련 패망은 논외로 치자. 대영제국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몬 1960~1970년대 ‘영국병’의 주범으로 대부분의 전문가가 비대해진 노동조합을 꼽는다. 잘나가던 부국 아르헨티나를 망가뜨린 페로니즘의 가장 큰 특징도 반기업·친노동이다.

기업을 적대하고 자본 몫을 탈취하려는 방식은 낡고 시대착오적이다. 노동 비용의 과도한 증가에 자본은 태업과 탈출로 대응한다. 결국 노동자의 삶을 파괴한다. 대기업 노조 중심의 비민주적 작동 방식도 경계 대상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 약자의 희생 위에 거대 노조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중적·기형적 구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기업 노조 간부들, 그들만의 운동’이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한다는 잉여가치설, 노동만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노동가치설 같은 비과학적 사고도 여전하다. 시장경제의 모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노동 권력이 가장 득세하는 역설적 현실이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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