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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에 허덕여도 두쫀쿠엔 돈 안 아꼈다…"후진국형 소비" 경고

입력 2026-03-18 17:46   수정 2026-03-18 19:57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뒤 잊힌 엥겔계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비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계수가 지난해 31년 만에 30%를 넘어섰다. 고령화와 경기 부진으로 전체 소비는 위축됐는데 식료품과 외식 물가가 올라 식비 지출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얇아진 지갑에도 외식과 배달은 줄이지 않는 등 생활 양식이 변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18일 한국경제신문이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5년 엥겔계수는 30.3%였다. 1994년 30.0%를 기록한 지 31년 만에 30%를 넘어섰다. 지난해 한국 가계는 월평균 366만1594원을 지출했는데, 이 가운데 110만8372원을 식료품(56만7939원)과 외식비(54만433원)에 썼다.

일반적으로 엥겔계수는 후진국일수록 높다. 한국 엥겔계수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8년에는 48.3%, 이듬해에는 46.9%였다. 지출의 절반 가까이를 식비로 쓴 셈이다. 1970년대 40%대에 머물던 엥겔계수는 1980년 고도성장기에 진입하며 30%대로 떨어졌다. 1993년 29.4%를 기록하며 20%대에 접어들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27%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엥겔계수가 3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건 인구구조 변화와 무관치 않다. 연금 소득에 의존하는 고령자가 자동차, 의류, 가구 등 다른 소비는 줄여도 외식 등 식비 지출은 줄이지 않고 있어서다.

고용 위축과 주거비 상승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청년층도 15만원짜리 특급호텔 빙수, 개당 1만원이 넘는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 같은 ‘작은 사치’에는 지갑을 여는 등 소비 행태가 변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한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29.4%, 소비지출은 24.5% 늘어났는데 식비 지출은 35.4% 증가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도 엥겔계수가 치솟고 있다. 지난해 일본 엥겔계수는 28.6%로 4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연금소득 의존해도 외식은 포기안해…늙어가는 한국의 단면
먹고살기 더 팍팍해진 삶…한국 경제 하락세 진입 신호도
#서울 서초구 단독주택에 살던 80대 부부는 최근 도심 백화점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로 이사했다. 노부부가 매일 장을 봐서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워 내린 결정이다. 요즘 이 부부는 아파트 상가 식당가와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삼시 세끼를 모두 해결한다.

#인천에 사는 30대 부부는 월 소득 400만~500만원의 40~50%(160만~250만원)를 식비로 쓴다. 주 3~4회 외식은 기본. 최근 유행한 6000원짜리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를 지난 한 달 내내 매일 사 먹었다. 남편 A씨는 “기분 전환용 디저트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라며 “부동산 같은 먼 미래 대신 지금의 우리에게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먹는 데 돈 아끼지 않는 사회
지난해 한국 엥겔계수가 3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30.3%를 기록해 1994년(30.0%) 이후 31년 만에 30%를 넘어섰다. 엥겔계수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 구입비와 외식비를 합한 식비 비중으로, 가난한 나라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인다.

엥겔계수가 반등한 것을 ‘한국이 후진국으로 후퇴한 증거’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가처분 소득 기준 빈곤율은 2011년 18.6%에서 2021년 14.8%로 떨어졌다. 빈곤율은 전체 인구 중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사람 비율이다.

다만 빈곤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먹고살기가 나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소득은 3.4% 증가했지만 처분가능소득은 2.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이자 비용 등 ‘비소비 지출’이 5.7% 늘어난 영향이다.

특히 주택 대출 이자가 증가하면서 소비를 질식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일 발표한 ‘주택 가격 상승이 연령별 소비 및 후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집값이 5% 오를 때 50세 미만 가계의 후생은 0.23%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젊은 층이 최초 주택 구매나 주거 수준 상향 이동을 위해 저축을 늘리거나 차입을 확대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먹거리 물가지수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6년째 소비자물가지수를 1~2%포인트 웃돌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가 2.1% 오를 때 식품물가지수는 3.2% 상승했다.

젊은 세대의 소비 행태도 엥겔계수를 밀어올린다는 분석이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어지면서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트렌드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영향으로 배달 음식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것도 엥겔계수를 밀어 올렸다. 같은 기간 ‘집밥 지출’을 뜻하는 식료품·비주류 음료 지출이 33.1% 증가하는 동안 외식비는 37.9% 늘었다.
◇“한국 경제 하락세 전조” 분석도
엥겔계수 상승을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하락세에 접어드는 전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세계적으로 고령자 비중이 증가할수록 연금 의존도가 높아져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도 사회보장비 지출 부담 증가와 함께 엥겔계수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OECD 1위인 노인 빈곤율, 역대 최저 수준(2026년 2월 326만2000명)을 기록한 20대 취업자 수, 38.2%까지 높아진 비정규직 비율 등 허약한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도 약점으로 꼽힌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 올해 물가가 3%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돼 삶의 질은 더욱 팍팍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인구 구조 및 소비 패턴이 비슷한 일본도 지난해 엥겔계수가 28.6%로 1981년(28.8%)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30년 넘게 실질 임금이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엥겔계수가 44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자 일본에서는 “국가 전체가 다 같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중장기적으로 소득 기반을 확충해야 엥겔계수를 낮출 수 있다”며 “생산성 제고 등 구조개혁을 통해 실질소득을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효/김익환/남정민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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