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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먼 우주, 시작은 늘 이곳

입력 2026-03-23 18:00   수정 2026-03-24 00:05

새벽 5시, 역 플랫폼은 아직 조용하다. 나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대전행 기차에 오른다. 매주 위성 하드웨어 개발팀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 길 끝에는 늘 작은 설렘이 있다. 위성 제조시설 ‘스페이스랩’을 처음 만들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우주 산업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발사 경험이 없으면 입찰 참여조차 어렵고, 기회를 얻더라도 고객은 시설과 설비 수준을 꼼꼼히 따진다. 개발 공간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다. 이 회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갖췄는지 보여주는 얼굴이다. 당시 우리의 시설은 10평 남짓했기에 더 큰 성장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엔지니어가 제대로 일할 수 있고, 고객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공간 디자이너에게 요구한 것은 명확했다. “우리 회사의 정체성이 공간에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조직의 방향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매일 머무는 공간이 그 메시지를 전한다면 구성원은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위성을 조립하고 설계하는 클린룸으로 들어가기 전의 환복실은 우주선에 탑승하는 입구처럼 설계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지상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회의실의 조명은 위성 궤도 형태로 배치했고, 나선형 계단은 우주선 내부를 떠올리게 했다.

라운지에는 특히 많은 고민을 담았다. 클린룸은 기계 소리가 가득하고, 외부 먼지를 차단하기 위해 내부 압력이 높다. 몇 시간만 있어도 쉽게 지치기 때문에 라운지는 정반대로 설계했다. 나무 재질을 사용해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카페처럼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클린룸과 회의실을 통유리로 연결한 것도 같은 이유다. 대부분의 클린룸은 폐쇄적이다. 엔지니어는 고립된 공간에서 일한다. 우리는 그 벽을 일부 허물고 서로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묵묵히 부품을 조립하는 동료를 보며 힘을 얻고, 회의실의 열기가 다시 현장으로 전해졌다. 공간이 조직 문화를 만든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고가의 장비도 도입했다. 경영 관점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로 살아온 시간은 분명한 답을 줬다. 외부 시설을 전전하며 테스트를 반복하는 수고를 줄이고 싶었다. 큰 비용이 든 만큼 값어치를 하도록 만들면 된다고 믿었다. 처음 완성된 공간을 보여준 날, 엔지니어들의 눈빛이 말해줬다. “이제 우리도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 그 자부심이 공간 안을 채웠다.

어느덧 스페이스랩을 연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우리에겐 일상 공간이 됐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조용히 부품을 다듬고, 회의와 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한다. 참으로 평범한 하루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주로 향하는 길은 이런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우주는 멀지만 그 시작은 늘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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