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던 한국 증시에 급제동을 건 기폭제는 미국·이란 전쟁이지만 그 전부터 불안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코스피지수가 1년 내내 거의 쉼 없이 오르며 과열된 데다 ‘빚투’마저 급증해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깨지기 쉬운 상황이었다.게다가 월가에선 사모신용 부실이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할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블루아울, 블랙록, 블랙스톤 같은 대형 사모신용 운용사가 대규모 환매 요구에 직면했다. 은행이 대출하길 꺼리는 기업에 돈을 대며 급팽창한 사모신용 시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의 말처럼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주변엔 더 많은 바퀴벌레가 숨어 있는 법이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인플레이션 압력도 세계 경제에 골칫거리다. 미·이란 전쟁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국제 유가가 뛰고 공급망이 교란되며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도 상당 기간 어려워졌다.
월가 투자심리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주요 펀드매니저 설문을 토대로 산출하는 ‘불 앤드 베어(Bull & Bear) 지표’는 8.2에서 5.6까지 떨어졌다. 0~10으로 표시되는 이 지표가 낮을수록 투자심리가 불안하다는 뜻이다. 이들 펀드매니저가 굴리는 펀드의 현금 비중은 6년 내 최고치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지금은 ‘진짜 바닥(big lows)’이 아니라고 BoA는 진단한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현금으로 도망치는 순간이 진정한 바닥인데, 아직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가가 더 떨어질 위험이 크다는 경고다.
이런 진단은 민스키 모멘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이먼 민스키에 따르면 주가가 오를 땐 열광과 탐욕, 상승장이 계속될 것이란 환상이 시장을 지배하고 주가 상승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논리가 등장한다. 빚투가 성행하고 주가 하락 위험에 눈 감는 현실 부정이 늘어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가가 폭락하며 공포와 투매가 엄습하고 시장은 절망에 빠진다. 지금은 탐욕이 공포로 바뀌며 시장이 붕괴하는 민스키 순간이 가까워진 건 아닌지 주의해야 할 때다.
시장에선 이미 유동성 경색 조짐이 보인다. 국제 유가와 달러인덱스를 곱해 산출하는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지수가 2008년 금융위기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1만을 넘었다. 고유가와 강달러가 겹친 탓인데, 이는 통상 유동성 축소 신호로 해석된다. 최근 국내외 증시는 물론 금, 은, 미 국채 가격까지 동반 급락한 것도 현금 외에는 ‘숨을 곳이 없다’는 불안을 반영한다.
물론 그간 한국 증시의 랠리를 단순히 거품으로 치부할 순 없다. 인공지능(AI) 시대, 경제와 안보가 직결되는 시대의 핵심인 반도체, 로봇, 조선, 방산, 원전 등에서 한국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이며 증시가 ‘리레이팅’된 측면이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올해 예상 순이익이 450조원을 넘고 이 경우 주가수익비율(PER)은 평균 10배 정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주주친화 정책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역대급 이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순이익의 60% 가까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기업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거나 주춤하면 시장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다. 코스닥시장은 더 위태롭다. 유가증권시장보다 PER이 월등히 높아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상승장 때 소외될까 두려워 무모하게 시장에 뛰어든 FOMO(fear of missing out) 투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빚투는 위험 수준이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3조원대로 사상 최대다. 이 중 코스닥시장 투자가 11조원을 넘는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썰물 때가 되면 누가 알몸으로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
탐욕이 공포로 바뀌는 일이 잦은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집 팔고 주식’을 외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시장이 흔들려도 견딜 수 있는 방어적 투자가 절실하다. 빚투부터 줄이는 게 그 시작이다. 정부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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