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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찬란했던 청춘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입력 2026-03-24 17:36   수정 2026-03-25 09:00

나는 코카인을 흡입하거나 대마초와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이건 티끌만큼도 자랑스럽지 않지만 내가 늦되고 수줍음 과잉이라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연모하는 소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내 사춘기는 지나갔다. 나는 미술실에서 밤늦게까지 정물화를 그리거나 혼자 조용히 책을 읽었다. 청소년기의 내 취향은 청고했는데, 그건 친교의 범주가 좁았거나 남자건 여자건 나쁜 인간을 피해 나간 행운 덕분이다. 스물 중반 출판사에 입사해 편집 일을 배우며 비로소 사람들과 친하게 어울리며 맥주를 입에 댔다.

내일은 없다는 듯 퍼마신 날들

A 선생과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번역자와 편집자로 만났다. 나는 스물다섯 살로 새내기 편집자고, A 선생은 마흔한 살로 꽤 이름난 번역가이자 술꾼이며 낚시꾼이었다. 영자신문 기자를 거쳐 번역가로 나선 A 선생의 영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내 첫 일감이 A 선생이 번역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원고 교정이었다. 헌책방에서 구한 <어둠의 심연에서>라는 카잔차키스 산문집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런 처지에서 ‘피의 여로’를 겪은 작가의 생애를 속속들이 알게 된 뒤 언젠가 작가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다는 지중해의 크레타섬을 가보리라는 결의를 혼자 속으로 다졌다.

내가 A 선생과 만난 1980년은 화요일로 시작되는 윤년이었다. 유신헌법으로 장기 집권을 꾀하던 독재자가 죽은 이듬해 광주 5·18 항쟁의 비극을 목도했다. 그해 컬러TV가 전국 시판을 시작하고, ‘전국노래자랑’이 KBS TV에서 처음 방영되었다. 8월 말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표결로 전두환이 대통령 권좌를 차지하고, 곧 대학 휴교령도 전격 해제됐다. 월간 ‘문학사상’이나 ‘뿌리 깊은 나무’의 구독자이던 그 시절 나는 ‘숲속의 빈터’라는 광화문의 술집에서 A 선생, 출판사 편집자, 문화부 기자, 연극배우 등과 어울렸다.

A 선생은 여전히 현란한 화술로 좌중을 휘어잡곤 했다. 마포나루가 있던 한강을 맨몸으로 헤엄쳐 도강하던 소년 시절 이야기, 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방학마다 영문소설을 써서 미국 출판사로 투고한 이야기들은 여러 번 들어도 지겹지 않았다. 시대는 암담하고 우리 젊음은 뾰족하게 빛났다. 세대 차를 뛰어넘은 벗들이 어울린 흥겨운 술자리에서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맥주를 엄청나게 마시고 도취한 채 흥청거렸다.

붉은 토마토가 땡볕에 익던 여름

청춘이란 거저 얻은 공훈일 뿐인데, 우리는 그걸 함부로 낭비했다. 내 생업이던 출판업종이 불황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사실은 밀리언셀러들이 펑펑 터지던 시절이다. 어느덧 젊음은 쇠락하고 우리는 제 길을 찾아 흩어졌다. 어쩐 일인지 일과 연애는 꼬이고 인생은 미지근해진 맥주같이 무미해졌다. <하얀 전쟁>이란 소설로 유명해진 A 선생과도 소식이 끊겼다. 여러 해가 흐른 뒤 노환으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느 여름, 한 젊은이가 맥주를 퍼마시며 보낸 날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단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었다. “여름 내내 나와 쥐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25미터 풀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맥주를 퍼마셨고, 제이스 바의 바닥에 5센티미터는 쌓일 만큼의 땅콩껍질을 버렸다.” 내게도 세상의 맥주를 다 들이켤 기세로 마시던 여름이 있었을까? 맥주를 들이켜고 취기로 비틀거린 여름밤이 몇 번은 지나갔을 테다.

붉은 토마토가 땡볕에 익던 그 여름, 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심해 탐사 잠수부같이 어두운 곳으로 숨었다. ‘새’를 만나 연애를 하며 나는 처음으로 인생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지만 ‘새’는 모든 걸 뒤늦게 깨닫는 사내 곁을 떠난 뒤였다. 세상의 왕들은 늙고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며 맥주를 마셨는데, 나는 날마다 죽는 엑스트라 배우같이 보람 없는 삶의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은 채 공허 속을 헤맬 뿐이었다. 사는 게 즐겁지 않아 팔목이라도 긋고 싶어 안달하던 나는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스스로에게 황야가 되렴, 하고 속살거렸다. 인생이 비극도 희극도 아닐 뿐만 아니라 간단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다는 걸 비로소 깨치며, 나는 쓸쓸하게 나이를 먹어갔다.

맥주가 베풀던 무상의 기쁨이여

젊은 우리들은 왜 그토록 맥주를 마셨을까? 청춘에 도취한 채 마신 맥주는 젊음과 권능을 북돋우며 무미한 삶을 거두고 멜랑콜리라는 선물을 건넸다. 우리는 동물의 야만과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가득 찬 맥주를 들이켜는 축제의 나날을 보냈던 건데, 마치 촉법소년의 미숙한 연애만큼이나 짜릿했다. 여름철의 맥주는 행복의 묘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고통을 피해서 무릉도원에 닿는 촉매제이자 생을 경이롭게 한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취했던 거다. 그러나 청춘 시절은 빠르고 속절없이 지나갔다.

나는 별서(別墅) 한 채 없이 외동딸을 살뜰하게 거두기는커녕 수탉 한 마리도 건사하지 못한 채 헛되이 연륜만 쌓아갔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서 맞닥뜨린 건 무지몽매한 노년이다. 그새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돌아보니 내 인생은 이룬 것은 얄팍하고 내가 저지른 오류의 세목은 만년설로 덮인 큰 산 같았다. 여전히 사랑을 버거워하거나 가을 저녁 문설주에 이마를 대고 북녘 하늘에 뜬 쇠기러기 떼에 눈길을 주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나는 더는 맥주를 입에 대지 않았다. 취흥 속에서 뿔 나팔을 불던 청춘의 때는 사라지고 그 시절의 기억도 희미해졌다. 사랑의 상실은 뼛속 깊은 데 박힌 듯 아픈데, 나는 ‘새’의 행방조차 모르고 살았다. 먼 고장에서 보내오던 편지가 끊기고, 내 안의 공허는 길쭉해졌다. 맥주가 베풀던 무상의 기쁨도 내 이력에서 결락한 지 오래였다. 인생의 심오함은 모른 채 내 인생에서 맥주가 퇴출되었다는 쓰디쓴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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