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증권사 건전성 강화에 고삐를 죈다. 주식·채권 등 시장성 담보 자산에 할인율을 적용하는 '헤어컷'을 도입해 유동성 비율을 더욱 보수적으로 산출하게 하고, 규제 대상을 전(全) 증권사로 확대한다. 유동성 위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시장 충격에 대비해 현금화 여력을 높이자는 목적에서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증권사 유동성 규제 체계 개선안'을 올 상반기에 발표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금융위원회, 증권업계와 최종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검토 중인 개선안에 따르면 증권사는 앞으로 주식·채권 등 시장성 자산에 헤어컷(담보가치 할인율)을 적용해 유동성 비율을 산출하게 된다. 그동안 만기 3개월 이내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눠 구하는 유동성 비율(감독 규정 100% 이상)은 단기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돼 왔는데 이를 더 보수적으로 산출하게 하는 것이다.
유동자산에 적용되는 할인율은 자산 종류와 신용등급에 따라 차등을 둔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할인율은 △AA-~AA(A1) 등급 채권 7% △A+(A2) 이하 등급 채권 10% △주식·외화증권·개방형 펀드·상장지수펀드(실물형 국공채 ETF 제외) 15% △합성형 ETF 30% 등이다.
규제 대상도 기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파생결합증권 발행사에서 모든 증권사로 확대된다.
개선안은 시장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 보유 담보 자산이 매매되지 않아 유동성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조치다.
앞서 2022년 증권사들을 유동성 위기로 내몬 '레고랜드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약속한 춘천 레고랜드 조성 사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유동화증권이 부도 처리되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됐고,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이후 증권사의 현금화 여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 감독당국과 업계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유동성 규제 체계 개선은) 정상 상황과는 달리 시장 급변이나 유사시 현금화가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감안하자는 취지"라며 "유사시 작동할 수 있는 금액을 보수적으로 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지난달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증권사의 자산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그 위상에 걸맞은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건전성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자자 보호와 모험자본 활성화도 공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 여력이 다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모험자본으로 주로 투자하게 되는 중소형 상장사나 비상장 주식 등에는 할인폭이 더 클 수밖에 없는 만큼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 여력이 일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선안 발표 이후) 증권사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주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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