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시는 옛말…아트 시티로 재탄생한 마카오

입력 2026-03-26 17:22   수정 2026-03-27 10:03



지난 10일 마카오 시티오브드림즈(City of Dreams) 앞 광장. 장막이 걷히는 순간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두상 두 개가 서로를 마주한 설치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고, 화려한 코타이스트립 거리에 웅장함을 더했다. 이날 공개된 작품은 현대 미술 거장 대니얼 아샴의 신작 ‘드림 엔트런스’(Dream Entrance·꿈의 입구). 마카오가 ‘카지노 시티’를 넘어 ‘아트 시티’로 진화했음을 알리는 선포식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마카오 정부의 전략적 결단이 있다. 최근 마카오는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라는 낡은 외피를 벗기 위해 비게임(Non-gaming) 분야, 특히 문화·예술에 전례 없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는 복합 리조트에 카지노·숙박을 넘어선 예술적 가치를 요구했고, 이에 화답하듯 코타이 마천루는 저마다 거대한 갤러리로 변모 중이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으로 알려진 모르페우스호텔은 1개 층을 모두 설치 작품으로 채우고, 호텔 동선 속에서 자연스럽게 거장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생화 수천 송이와 제프 쿤스의 ‘튤립’ 등 수백억원대 컬렉션을 투숙객 동선에 배치한 윈 팰리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실내 LED 스크린으로 디지털 아트를 전시하는 MGM코타이의 ‘스펙터클’ 광장, 베니션마카오가 선보이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팀랩 슈퍼내추럴’ 전시까지. 이쯤 되면 도시 자체가 ‘거대한 갤러리’로 진화 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도심의 화려함 뒤편 골목에 들어서면 세월이 숙성시킨 또 다른 예술의 정취가 기다린다. 파스텔톤 건물이 아줄레주(포르투갈식 타일) 패턴과 섞여든 타이파 빌리지와 시간이 멈춘 듯한 콜로안의 골목은 마카오가 품고 있는 숨은 얼굴이다. 최근 복원된 익롱 포르투갈 화약 공장(Iec Long Firecracker Factory)은 낡은 벽돌 벽에 현대적 감각을 덧입혀 산업 유산을 예술 자산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동안 마카오를 홍콩 여행 중 잠시 들르는 유희의 도시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제 편견을 내려놔도 될 것 같다. 예술과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걷다 보면 이 도시가 영감을 주는 ‘데스티네이션’ 그 자체임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될 테니.
7m 카우스 조각·무라카미 꽃…호텔 곳곳 흐르는 예술의 향연
자하 하디드 마지막 역작…마카오 '모르페우스 호텔'

마카오에서 가장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코타이 스트립. 이곳의 공기를 바꿔 놓은 상징적인 좌표를 꼽으라면 단연 모르페우스(Morpheus)다. 뼈대를 외부로 드러낸 파격적인 외관은 멀리서도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 호텔의 진정한 위력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시작된다.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거장의 작품이 투숙객의 동선마다 배치돼 각자의 서사를 뽐낸다. 이른바 ‘플루이드 뮤지엄(Fluid Museum)’이라고 불리는 이 예술 공간에서 여행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서사를 따라 흐른다.

거대한 갤러리가 된 건축물

2018년 문을 연 모르페우스호텔은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이다. 멜코그룹이 운영하는 시티오브드림즈(COD) 계열 호텔 중에서도 가장 ‘럭셔리’를 지향한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역작이기도 하다. 이 건물엔 내부를 감싸는 평범한 외피가 없다. 유선형으로 짜인 철골 구조, 즉 ‘엑소스켈레톤(exoskeleton·외부 골격)’ 자체가 건물의 구조이자 디자인이다. 외부에 노출된 강철 뼈대는 미래 도시의 일부와 같은 인상을 준다. 뻥 뚫린 보이드(void) 공간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로비와 루프톱을 오가는 파노라마 엘리베이터를 타면 시각적 자극은 정점에 달한다. 이동하는 짧은 시간조차 하나의 거대한 설치 미술 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모르페우스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한 층 전체를 예술 작품으로 채워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시야를 채우는 스트리트 아트 거장 카우스(KAWS)의 거대한 설치 작품 ‘굿 인텐션(Good Intentions)’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호텔 내 곳곳엔 현대 미술사의 굵직한 거장의 작품들이 있다. 최근 베일을 벗은 대니얼 아샴의 ‘드림 엔트런스’는 관객의 ‘체험’에 방점을 찍는다.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거대한 두상, 그 내부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은 인간 의식 내부의 복합성을 은유했다. 아샴은 지난 10일 호텔의 새 비전을 선포하는 행사(Be a Dreamer)의 일환으로 열린 언베일 현장에서 “호텔 공간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관람객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심리적 관문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조각의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은 기묘하면서도 숭고한 감각을 깨운다.


카지노 앞 로비도 평범함을 거부한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벽면에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새겨 넣은 꽃(Untitled)들이 가득 피어 있다. 일본 전통 미술과 대중문화를 결합해 ‘슈퍼플랫’이란 개념을 정립한 그의 작품은 가장 상업적인 공간인 카지노 앞에서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며 진정한 슈퍼플랫의 의미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장미셸 오토니엘의 쇠구슬 조각 작품(Wild Pansy)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하늘과 바다의 색채를 옮겨온 듯한 중국 작가 자오자오의 웅장한 그림이 통로를 가득 메운다.

무대와 테이블 위로 흐르는 예술

예술은 무대와 테이블 위에서도 펼쳐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쇼인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는 인간의 육체가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무대라기보다 거대한 연못처럼 느껴지는 수중 공간과 허공을 부지런히 오가는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COD 계열 호텔 내에만 미쉐린 별 도합 6개에 달하는 레스토랑들이 포진해 있다. 광둥 요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미쉐린 3스타 ‘제이드 드래곤’과 요리계의 거장 알랭 뒤카스의 철학이 담긴 ‘알랭 뒤카스 앳 모르페우스’가 대표적이다. 이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최근 협업을 통해 국경이 없는 다이닝의 신세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짧은 기간 머물며 체감했다. 카지노 테이블 앞에 앉지 않아도 이 도시의 낮과 밤은 충분히 화려하고,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는 것을. 압도적인 공간이 선사하는 예술적 경험 하나만으로도 마카오를 ‘목적지’로 삼을 이유는 충분하다.
마카오 속 작은 포르투갈…올드타운 정취 고스란히
마천루 옆 숨은 명소 타이파·콜로안

마카오의 화려한 마천루를 지나 시내에서 몇 분만 벗어나면 눈앞의 풍경은 180도 달라진다. 민트와 레몬색 파스텔톤 건물이 아줄레주(포르투갈식 타일)의 푸른 패턴과 섞이며 부드러운 잔상을 남긴다. MZ세대에게는 ‘인스타그래머블’한 마을로 잘 알려진 타이파 빌리지다. 카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진한 에스프레소 향, 골목 끝 식당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접시 소리. 이곳의 시간은 철저히 현지인의 생활 리듬 위에서 흐른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예술적 공간도 있다. 최근 마카오가 공들여 복원한 ‘익롱 화약공장’이 이 마을 근처에 있다. 한때 폭약을 제조하던 공장의 허물어진 붉은 벽돌벽과 거대한 공장 구조물을 그대로 남긴 채 현대적인 설치 미술과 상업 공간을 들였다. 한때 화약 연기가 가득했던 산업 현장은 이제 문화적 해석이 덧씌워진 ‘기억의 전시장’이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콜로안이란 도시에선 시간의 템포가 한 박자 더 느려진다. 인기 포토 스폿인 ‘노란 성당’(성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성당) 앞 광장을 걷다 보면 짠 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낡은 창틀에 걸터앉은 고양이, 이곳저곳 페인트가 벗겨진 담벼락 위의 오래된 벽화들. 이곳의 풍경은 세월이 천천히 그리고 간 낙서에 가깝다. 마카오의 도심처럼 뭔가를 ‘전시’하진 않지만, 그 자체로 조용히 머물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다.

때로는 화려한 전광판보다 칠이 벗겨진 벽면의 낙서가 여행자에게 더 깊은 위로를 건네는 법이다. 카지노의 네온사인이 마카오의 화려한 겉모습이라면, 골목의 바람과 낡은 건물 사이의 정적은 진정한 여행자만이 알 수 있는 도시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

마카오=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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