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동의 없는 녹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입력 2026-03-26 17:22   수정 2026-03-27 00:06

“그렇다면 저도 녹음하지 않고 휴대폰을 종료하겠습니다.”

고객사의 내부 조사를 위임받아 진행하다가 발생한 일이다. 조사 내용을 녹음하지 않기로 피조사자와 합의한 뒤 분명 상대방이 휴대폰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얼마 후 이 조사의 녹취록이 관련 사건 증거로 그대로 제출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피조사자는 휴대폰 두 대를 준비해 한 대는 처음부터 녹음을 목적으로 주머니에, 한 대는 종료 버튼 누르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들고 온 것이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타인’이란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를 의미한다. 자신이 당사자로 참여한 조사는 타인 간 대화가 아니므로 조사 관여자인 나의 동의를 받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목소리가 녹음돼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공개되는 것은 직업이 변호사라고 해도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인사 노무와 관련한 분쟁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가장 확실한 증거자료 중 하나가 녹음 파일이나 녹취록이다. 자신이 대화 당사자로 참여한 녹취록은 물론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그러니까 동의 없이 녹음한 타인 간 대화의 녹음파일도 민사와 행정소송에서 버젓이 증거로 제출된다.

흔히 알려져 있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은 형사소송 과정에서만 적용되는 것이고, 민사·행정소송에서는 법률을 위반해 취득한 증거일지라도 법원 재량에 따라 증거로 채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간·장소 불문하고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녹음이 직장 내 동료 간 신뢰와 인화를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다는 목적으로 모든 동료와의 대화 모두를 녹음한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다른 동료가 이 근로자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고, 또 이것을 따돌림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신고하기까지 했다.

당사자라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대화 참여자의 음성을 몰래 녹음하는 것을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게 타당하냐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지 않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선고한 ‘2025다204730’ 판결을 통해 이를 형사 문제와는 별개로 인격권에 속하는 음성권 침해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해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복제, 방송, 배포 등이 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 상대방 의사에 반해 그의 음성을 녹음하거나 녹음한 음성을 방송·배포하는 등의 행위는 형사 문제가 아닐지라도 음성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방어를 위해, 또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면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하더라도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의 명시적인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기망 또는 협박해 녹음하는 경우, 또는 녹음한 음성을 상대방 동의 없이 방송·배포하는 등의 경우에는 인격권에 속하는 음성권 침해로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방을 둘러싼 CCTV에, 언제든 녹음이 가능한 휴대폰에, 갈수록 내 의사와 무관하게 기록되고 관찰되는 삶을 감내해야 하는 시대다. 초상권, 음성권 등 개인의 전속적 권한과 처분이 필요한 인격권의 보호도 도외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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