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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산 물건을 내 취향껏 고쳐 쓸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상표법에는 적법하게 판매된 상품의 상표권은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멸한다는 이른바 '권리소진(First Sale Doctrine)'의 원칙이 존재한다.이 원칙에 따르면 소비자가 구매한 명품 가방을 자르고 꿰매어 자신만의 소품으로 변형하는 것은 소유권의 정당한 행사처럼 보인다. 내 돈 주고 산 물건을 내 뜻대로 처분하는 것은 소유권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의의 초점이 개인이 아닌 '전문 리폼 업체'로 옮겨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문 업자는 기본적으로 의뢰인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고 영리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전문 업자가 타인의 상표가 붙은 원단을 사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상표법 위반은 아닌지, 또는 가방을 지갑이나 파우치로 바꾸는 것처럼 제품의 동일성을 해칠 정도로 변형해 실질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 것으로 보아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리폼' 명품가방이 상표권 침해가 아닌 이유
실제로 세계적인 명품 업체인 L사는 국내 전문 리폼 업자를 상대로 리폼 행위가 자사의 상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은 L사의 손을 들어주며 리폼 업자의 상표권 위반을 인정했으나, 최근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며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4다311181판결).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리폼 업자가 상품 소유자로부터 개인적인 사용 목적으로 리폼 요청을 받아 작업한 뒤 이를 다시 반환했다면, 리폼 과정에서 상표가 노출되더라도 이를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은 유통을 전제로 한다. 상표의 본질은 상품의 출처를 식별하게 하여 공정한 경쟁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 따라서 상거래가 아닌 개인적 사용 영역 내에서 상표가 노출되는 것은 상표법이 보호하려는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 국제적인 기준이다.
둘째, 개인적 영역 내에서의 사용은 침해가 아니다. 상표 표시 행위가 상업적 목적이 아닌 개인의 비공개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는 거래시장에서 보호해야 할 상표권자의 업무상 신용이나 수요자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셋째, 소유권 행사의 자유와 권리소진 원칙이 고려되어야 한다. 상표권이 소진된 제품의 소유자는 해당 물품을 자유롭게 사용·수익·처분할 권리가 있다. 비록 동일성이 상실될 정도의 큰 변형이 가해졌더라도, 이를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개인적으로만 사용한다면 이는 정당한 소유권 행사의 범주에 포함된다.
넷째,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지속 가능성의 고려다. 리폼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자원 재활용(Upcycling)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는 행위다. 법원은 상표권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소비자 후생과 환경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다섯째, 제3자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리폼에는 고도의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 소유자가 직접 리폼하는 것만 허용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면, 소유권자가 누려야 할 리폼의 자유는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 제3자를 통한 리폼 역시 본질적으로는 소유권 행사의 연장선이다.
여섯째, 리폼 대가의 성격이다. 리폼 업자가 받는 대금은 '새 제품의 판매가'가 아니라 '리폼 서비스라는 노동의 대가'에 해당한다. 소유권이 시종일관 의뢰인에게 있고 결과물이 다시 의뢰인에게 귀속된다면, 이 거래는 시장 유통이 아닌 개인적 사용 영역 내의 서비스 제공으로 보아야 한다.
명품 리폼했다면...'소장'만 해야
다만, 대법원의 판결이 모든 리폼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법원은 어떤 경우에 리폼 업자가 상표법 위반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세웠다. 만약 리폼 업자가 단순히 의뢰를 받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리폼 과정을 주도하며 리폼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판매하거나 자신의 제품인 것처럼 상거래 시장에 유통시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이 경우 리폼 제품은 더 이상 개인의 소장품이 아니라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 되며, 이때의 상표 표시는 상표의 출처 식별 기능을 저해하는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상표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앞으로 국내 리폼 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업계 종사자와 소비자들은 여전히 주의해야 한다. 법원이 인정한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소비 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폼 제품이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순간, 그것은 창의적인 재활용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상표권 침해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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