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쟁 이전 t당 600달러 수준이던 나프타 가격은 최근 1100달러를 넘어섰다.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국가는 나프타의 상당량을 중동에 의존한다.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시 공급 차질이 생산비 상승과 가동률 저하로 이어진다.이제 대응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한 수입처 다변화를 넘어 국내에서 확보 가능한 대체 원료를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의 하나가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에서 생산되는 나프타급 재생원료다. 그동안 소각이나 매립 처리 대상이던 폐기물이 소중한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이미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화학기업은 기존 NCC 설비에 바이오나프타 등 재생원료를 투입해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다. 설비를 바꾸지 않고 원료만 전환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안정과 탈탄소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도 기반 기술은 확보돼 있다. 이미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나프타급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까다로운 ISCC 플러스 국제 인증을 통과해 글로벌 시장 진입 가능성도 열었다. 2023년 기준 국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약 1400만t이다. 이 중 60% 이상을 나프타급 재생원료로 전환한다면 연간 840만t 생산이 가능하다. 현재 나프타 수입가격 기준으로 약 92억달러(약 13조원)에 해당한다.
재생원료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기업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스코프3’, 즉 공급망 간접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문제는 제도의 미비다. 현재 국내 재생연료 정책은 중유와 디젤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고급유 재생원료는 ‘사용 허용’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의무사용과 혼합비율, 스코프3 인정 체계가 부족하다.
이제 정책 전환이 필요한 때다. 재생유를 연료용, 일반 원료용, 나프타급 고품질 원료 등으로 구분하고, 고품질 재생원료에는 차등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목표 사용량 또는 단계적 의무사용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재생원료는 나프타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원료 안보와 탄소 규제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형 재생원료 기술의 글로벌 확산은 새로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나프타 리스크는 위기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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