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중국을 방문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이례적인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LVMH가 보유한 루이비통과 디올 등 현지 매장이 아니라 중국 명품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명품 가죽 브랜드 송몬트에 들러 가방 두 점을 구매한 뒤 주얼리 브랜드 라오푸골드 매장을 약 30분간 둘러봤다. 라오푸골드 매장에선 ‘정교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의 공장’ ‘짝퉁(모조품)의 나라’, 싸구려 공산품을 생산하던 중국이 변하고 있다. 자국 명품 브랜드를 키우기 시작했다. 명품 시장 큰손인 중국 소비자도 ‘궈차오(애국 소비)’ 열풍을 타고 자국 럭셔리 브랜드를 선호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자국 명품 브랜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반면 서구 정통 명품 브랜드는 일제히 부진에 빠졌다.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인 보쓰덩 등은 중국에서 급성장한 뒤 명품의 안방인 유럽 시장까지 파고들었다.29일 글로벌 명품업계에 따르면 라오푸골드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221% 증가한 273억위안(약 5조9000억원)이다. 중국 내 에르메스 매출을 추월했다. 전체 명품 소비의 30% 안팎을 차지하던 중국 부유층이 변심하자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의 실적은 나빠졌다. 구찌 모회사인 케링그룹의 작년 글로벌 매출은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같은 기간 LVMH 영업이익은 9% 줄었다.
수년 내 글로벌 상위 10개 명품 리스트에 중국 브랜드가 이름을 올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 명품 브랜드가 기존 명품 대비 가격은 낮게 유지하면서도 섬세한 제조 공정과 현지화 마케팅 등을 총동원해 시장을 확장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작년 매출 273억 위안…221%↑
‘황금계의 에르메스’라고도 불리는 라오푸골드는 중국 명품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창업한 이 브랜드는 초고가 금제품을 수공예로 만든다. ‘중국 왕실의 전통 세공 기술로 제품 하나당 600시간을 들여 작업한다’는 마케팅 문구를 내걸었다. 하지만 제품 가격은 200만~950만원대로 일반적인 명품 브랜드보다 낮은 편이다.판매 방식과 서비스는 철저히 서구 명품 전략을 차용했다. 통상적인 중국 주얼리 브랜드는 금 중량에 최소한의 인건비를 더해 약 10%의 이윤을 남긴다. 이에 비해 라오푸골드는 서구 명품 주얼리처럼 고정 가격 모델로 마진을 대폭 높여 제품 하나당 평균 41.8%에 달하는 이익을 확보한다.
큰돈을 쓰면서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중국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 라오푸골드가 급성장한 비결로 꼽힌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대학원생 황린(27)은 베스트셀러인 나비 모양 펜던트 등 3만7430홍콩달러(약 720만원)어치 주얼리를 샀다. 황씨를 비롯해 20·30대 라오푸골드 고객 대부분은 금 함량이 높고 명품 브랜드 대비 가격이 낮은 라오푸골드 제품이 자산 가치를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글로벌 금값 급등에 ‘궈차오’(애국 소비) 열풍까지 맞물려 라오푸골드는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라오푸골드는 지난해에만 매장 10곳을 새로 냈다. 전체 매장은 45곳으로 늘었다. 최근 싱가포르에 해외 첫 매장도 열었다.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앤드코는 중국 시장에서 라오푸골드가 에르메스는 물론 까르띠에와 반클리프아펠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의 주얼리 사업부 매출도 추월한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에서 ‘에르메스 피코탄의 대체품’으로 불리는 명품 가죽 브랜드인 송몬트의 마케팅 전략도 비슷하다. 송몬트 버킷백 가격은 약 421달러로 피코탄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송몬트 매출은 90%가량 늘었다. 향수 브랜드 ‘투서머’, 캐시미어 브랜드 ‘아이시클’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아이시클은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막스마라의 코트를 생산하던 공장을 인수해 고품질 캐시미어 제품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중국 토종 브랜드 시장(명품 브랜드 포함) 규모는 큰 폭으로 커지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는 중국 토종 브랜드 시장 규모가 2023년 2조500억위안(약 447조원)에서 2028년 3조위안(약 654조원)으로 5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중국 내에서 해외 명품 소비는 위축됐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중국 해외 명품 소비액은 2021년 4700억위안(약 102조원)에서 지난해 3600억위안(약 78조원)으로 감소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선 싸구려 제품을 양산하던 중국이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서구 명품 브랜드가 기존의 권위를 내려놓고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면 C럭셔리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 럭셔리 브랜드가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 오르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많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중국 브랜드는 아직 점유율이 매우 낮아 매출 증가율이 높아 보이는 착시가 있다”고 말했다.
홍콩=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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