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 6일 오후 5시 8분53조원.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신규 조성된 벤처펀드(벤처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 합산) 규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제2 벤처붐’을 일으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맞물리며 대규모 자금이 벤처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나 벤처펀드 만기가 속속 돌아오고 있지만 자금 회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증권업계 주도로 민관 합동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것도 시장에 묶여 있는 수십조원 규모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자금 투입이 ‘돌려막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 만기 도래 물량 얼마나 되나
벤처투자 전자공시시스템(DIVA)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 규모는 총 16조9252억원이다. 내년과 2028년에도 각각 7조1119억원, 8조8574억원 규모가 만기를 맞는다. 문재인 정부 때 집중적으로 조성된 벤처펀드의 청산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2019년 7조8698억원이던 신규 벤처펀드 결성액은 2020년 9조9853억원, 2021년 17조8040억원, 2022년 17조6603억원으로 치솟았다. 정부는 이 기간 모태펀드(벤처캐피털 펀드에 출자하는 펀드)를 통해 5조4997억원을 투입하는 등 벤처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집어넣었다.
(2) 벤처시장 ‘돈맥경화’ 어떻길래
벤처투자 운용 규모는 2021년 말 41조2848억원에서 지난해 말 66조7778억원으로 급증했다. 펀드 신규 투자액이 2022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음에도 운용 규모가 늘어난 건 기존 투자금이 회수되지 못한 채 시장에 계속 쌓여서다.
(3) 왜 이런 일이 생겼나
국내 벤처시장의 자금 회수가 원활하지 못한 건 과거 유동성이 넘쳐날 때 무분별하게 투자를 집행해서다. 산업 트렌드가 급속도로 바뀐 것도 자금 회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2차전지는 2020~2021년만 해도 시장을 주도하는 분야였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고평가 논란’에 직면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부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IPO 실적은 98건, 3조676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8건(-15.5%), 4408억원(-10.7%) 줄어든 규모다. 지난해 코스닥시장 IPO 금액은 전년 대비 15.9%나 감소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선진시장은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자금 회수가 약 80~90%를 차지하는 데 비해 한국은 IPO 의존도가 40%에 육박한다. IPO에 실패하면 벤처펀드의 자금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4) 세컨더리 펀드는 어떻게 조성되나
금융투자협회 주도로 증권업계가 세컨더리 펀드 조성 논의에 착수한 것도 이 같은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세컨더리 펀드는 벤처펀드 등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는 펀드다. 증권업계와 유관기관이 1조원씩 출자해 총 2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증권사별로 자기자본, 영업이익 등에 비례해 출자하는 구조가 유력하다.
벤처펀드는 세컨더리 펀드에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 뒤 신규 투자에 나서거나 펀드를 청산할 수 있다. 세컨더리 펀드의 수익모델은 부실채권(NPL) 펀드와 비슷하다. 벤처펀드가 처리하지 못하는 자산을 값싸게 사들인 뒤 업황이 회복되면 비싸게 팔아 수익을 얻는다. 업계에서는 세컨더리 펀드가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IPO에 실패한 매물 중 잠재력이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5)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나
정부가 코스닥시장 부양에 힘쓰는 이유 중 하나가 벤처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닥지수가 상승하면 IPO 기업이 늘어나며 벤처펀드 회수도 원활해져서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향후 5년간 150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 자금 일부를 세컨더리 펀드에 투입할 계획이다. 세컨더리 펀드 투자 규모를 늘려 미성숙 기업의 조기 상장에 따른 폐해도 방지한다는 방침이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