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에서 악수(惡手)는 한수지만 집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한다. 유리하게 혹은 무리없이 진행되던 전쟁에서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전쟁의 향배가 180도 바뀌거나 국가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읍참마속이라는 사자성어로 더 유명한 삼국지에서 마속이 명령을 어기고 산 속에 진을 친 일, 임진왜란에서 원균의 무리한 출전으로 인해 배 12척만 남기게 된 칠천량해전,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 일본의 진주만공습,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번의 악수가 참담한 결과를 야기한 예는 수두룩하다.
노란봉투법 시행 후 한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른바 ‘노조별 교섭단위분리’가 악수가 된 느낌이다. 노동조합이 가입한 연맹별, 노조별 교섭단위 분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정부의 가이드가 나오자, 여러 노조들이 너도나도 우리 노조만이 별도의 교섭단위가 되겠다면서 교섭단위분리를 신청한 상태다. 노란봉투법 이슈들이 교섭단위분리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교섭단위분리 신청이 있으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의 진행은 정지되기 때문에(노동조합법 시행령 제14조의 11 제7항), 교섭단위분리 신청이 들어온 사업장에서는 모든 절차가 올스톱이고, 당초 원청과 하청 노동조합간 원활한 교섭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정책방향을 가로막은 형국이다.
당초 교섭단위분리 신청이 이처럼 범람하게 될 줄 상상할 수 없었다. 원래 교섭단위분리 사건은 노동법을 전공하는 전문가들도 그 실무를 잘 알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여러가지 상황이 맞아야 교섭단위분리 신청 사건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인데, 실무상 전형적인 경우가 소수노동조합이 교섭단위를 분리시킨 다음 분리된 교섭단위에서 교대노조가 되어 교섭권을 가지려는 경우이다. 즉 사업장에 A직군과 B직군이 있고, A직군을 주된 조직대상으로 하는 a노동조합, B직군을 주된 조직대상으로 하는 b노동조합이 있고, a노동조합 조합원이 300명, b노동조합의 조합원이 500명이라고 가정하면, 전체 사업장을 교섭단위로 하면 b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되지만, 만약 A직군을 별도 교섭단위로 하면 a노동조합이 해당 교섭단위에서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a 노동조합이 교섭단위분리신청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a 노동조합이 당연히 교섭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A직군 교섭단위에서 별도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교섭단위 분리는 1사 1교섭단위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신청이 있더라도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에서의 차이점이 있어야 인정이 가능한 것이고(노동조합법 제29조의 3 제2항), 실무상 인용율도 상당히 낮다.
그런데 덜컥 원청 사업주를 사용자로 본다는 입법이 되었고, 바로 1사 1교섭단위 원칙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리적으로는 (사용자는 동일하니까) 원청과 하청 전체가 1개의 교섭단위가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경우 하청 노동조합과의 교섭촉진이라는 정책목표가 달성되기 어렵고 여러가지 난점(예를 들어 하청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되어 원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해버린다?)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입장을 바꾸어 기본적으로 ‘원청’과 ‘하청 전체단위’라는 2개의 교섭단위가 있다는 것으로 가이드를 하였다.
1사 1교섭단위에 부합하지 않지만, 현실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원청과 하청은 근로조건 등 여러가지 사정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 경영계에서도 하청 전체가 하나로 묶여 1개의 교섭단위가 되는 것이 아주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망외소득이 될 수도 있다. 하청 전체가 하나로 묶여 1개의 교섭단위가 되면 나중에 대체근로가 쟁점이 되었을 때 당해 사업과 관계있는 자의 범위가 넓게 해석될 수도 있고, 원청과 하청 전체를 하나의 교섭단위로 전제하였을 때, ‘하청 전체를 묶어달라’는 식의 교섭단위분리신청이 제기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하청 전체’라는 하나의 교섭단위 내에서 교섭단위분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입한 상급 연맹별로도 교섭단위분리가 가능하다는 가이드가 나왔고, 이를 기화로 봇물처럼 교섭단위분리 신청이 이루어지고 있다. 악수가 된 느낌이고, 단순히 악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첫째, 노조별 교섭단위 분리는 어느 노동조합에 가입이 되어 있느냐는 인적 속성을 기준으로 교섭단위를 정한다는 말인데, 앞서 본 것처럼 노동조합법은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을 기준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판단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이는 직군이나 직종과 같은 물적 속성을 기준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적 속성을 기준으로 한 교섭단위는 상정하기 어렵다.
둘째,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형해화하고 개별교섭을 강제함으로써 사용자의 동의권을 무력화하게 한다.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체계를 구축하고, 소속 노동조합과 관계없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의 제도인데, 노조별 분리를 하게 되면 분리된 단위의 구성이 노동조합의 조직이나 연대 구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고 교섭구조가 불안정해지게 된다. 한편, 원래 교섭단위가 분리되면 분리된 단위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다시 해야 하는데, 이미 노조별로 교섭단위를 쪼개놓은 이상 현실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할 수도 없다
노동조합법은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개별교섭을 허용하고 있는데, 노조별 분리를 인정하면 사용자의 동의 없이도 사실상 다수의 개별교섭 상태가 강제될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동의권 박탈이다.
셋째, 노동조합간 갈등, 타 노동조합의 대표성의 문제로 노조별 교섭단위 분리를 고안하였다고 치더라도, 그러한 문제는 이미 노동조합법에 공정대표의무로 해결이 가능하다, 다 이미 제도가 있는 것이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그 수단이 법에 맞지 않으면 타당하지 않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곧 노조별 교섭단위 분리에 관한 노동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고, 만약 노조별 교섭단위 분리가 허용되면, 교섭단위분리신청이 들불처럼 번져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계속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결정으로 악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왕 입법이 되었으니 합리적인 범위에서 잘 운영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사노무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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