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10일부터 시행 중인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의 파장이 크다. 2014년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모아 보낸 연대운동에서 유래한 이 법은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제기된 과도한 손해배상 문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입법 논의 과정에서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 범위와 교섭 의제를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고, 결과적으로 손해배상 제한을 넘어 교섭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제도로 진화하였다.
문제는 현장의 대응이다. 다수의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은 확실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까지 일단 관망하겠다는 태도에 머물러 있다. 노동조합 역시 이를 상생의 기회로 삼기보다 투쟁의 연장선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변화에 따른 부담과 불확실성을 서로에게 미루는 선택에 가깝다. 이러한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면 갈등은 해소되기보다 법적 분쟁으로 점철될 것이며, 이는 곧 사회적 비용의 급증과 상호 신뢰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i>#갈등의 해법은 ‘공방’이 아니라 ‘공동 해결’</i>
이번 개정의 핵심은 사용자 개념의 확산과 교섭 의제의 확대다.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주체라면, 계약서상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특정 주체에게 일방적인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제도 밖에서 겉돌던 갈등을 공식적인 교섭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해결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합리적 조치다.
즉, 노사관계를 형식적인 법적 책임 공방에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 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사용자성의 확대는 기업에 무한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주체가 대화에 나옴으로써 불확실한 갈등의 장기화를 막는 ‘비용 절감’의 길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규범은 법 조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해와 해석, 그리고 상호 신뢰가 결합될 때 비로소 현실의 질서로 안착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법적 책임을 지는가”를 둘러싼 공방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다. 노동은 경영의 제약을 이해하고, 경영은 노동의 삶을 살피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절실하다. 이러한 태도의 전환이야말로 새로운 법질서를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i>#제도를 안착시키는 두 축 '사회적 대화와 노동교육'</i>
이러한 전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가 바로 사회적 대화와 노동교육이다. 국가 차원의 노사정 대화뿐 아니라 지역·업종 단위의 중층적 협의 구조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획일적인 해법보다는 현장 맞춤형 논의가 갈등의 완충장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교육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법이 기준을 제시한다면, 교육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노사 당사자와 현장 관리자가 새로운 제도의 취지를 오해하거나 역량이 부족하다면, 제도는 오히려 갈등 증폭기가 될 뿐이다. 따라서 노동교육은 단순히 법령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갈등 관리 역량과 협상 기술, 그리고 공동의 가치를 찾아내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은 노사갈등의 ‘예방 인프라’로서 막중한 책무를 지닌다. 교육원은 협력적 노사관계 교육을 강화하고, 현장 맞춤형 콘텐츠를 통해 노사가 법적 대립 대신 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i>#새로운 협력의 사회계약을 향하여</i>
교섭을 단순히 비용 배분을 둘러싼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본다면 갈등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섭의 범위가 넓어지고 실질적 결정권자가 참여하게 되면, 논의의 초점은 작업 환경, 산업 안전, 숙련 고도화와 같은 ‘생산성 향상’의 기반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산업안전 기준을 공동 개선하여 사고 손실을 줄이고, 안정적인 인력 운영을 통해 품질을 높이는 과정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다. 지속적인 협의로 형성된 신뢰는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을 제공하며, 이는 기업 경쟁력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가치 창출’로 이어진다.
결국 노란봉투법의 성패는 갈등의 양(量)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는 질(質)에 달려 있다. 교섭이 소모적인 대립의 장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신뢰의 축적과 성과 창출의 과정으로 발전할 것인지는 노사 모두의 선택에 달렸다.
이러한 선택의 축적은 결국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은 질서로 이어진다. 18세기 장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으로 개인 간 합의로 공동체의 질서를 세웠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토머스 코칸(Thomas A. Kochan)이 강조한 바와 같이 노사정 간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계약(New Social Contract)’이다. 이는 급변하는 고용 환경에 맞춰 권한과 책임을 새롭게 정의하고, 상호 신뢰(Mutual Trust)와 협력을 통해 공동의 가치(Shared Value)를 키워가는 과정이다.
노란봉투법은 그 여정의 출발점이다. 법적 공방을 넘어, 새로운 협력의 사회계약을 만들어갈 것인지 여부는 결국 우리 시대 주체들의 책임 있는 선택에 달려 있다.
김종철 한국고용노동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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