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발에 허름한 운동복 차림으로 등장한 30대 배우 안상균이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이렇게 외쳤다. 이 대목은 이달 말 개막하는 창작극 ‘탠덤’의 애드리브 한 토막. 객석에선 까마득한 연기 선배 신구(90)와 박근형(86)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청년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다.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시선이었다.

연극내일 프로젝트는 한국 연극계의 미래를 이끌 청년 배우들이 연기 훈련부터 공연 제작까지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강훈구, 김정, 오세혁 등 국내에서 주목받는 연출가와 함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알려지며 공개 오디션에 1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최종 선발된 배우 30명은 10명씩 한 팀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신구와 박근형의 기부로부터 출발했다. 2023~2024년 '고도를 기다리며'가 100회 넘는 공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자 두 배우는 지난해 5월 감사의 뜻을 담은 기부 공연을 올렸고, 여기서 마련된 티켓 수익 전액과 공연업계 기부금을 모아 '연극내일기금'을 조성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청년 배우를 육성하는 '연극내일 프로젝트'가 작년 12월부터 가동됐다.

이날 신구와 박근형은 후배들이 준비한 무대를 바라보며 풋풋했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 신구는 "6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데뷔 당시) 어떻게 해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당황하고 옆도 보이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며 "젊은이들을 보니 우리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연극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고맙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1958년 연극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로 데뷔한 박근형은 "(따라갈) 빛이 없어서 찾아 해매던 우리에 비하면 그래도 빛이 있는 후배들을 보며 너무 부러웠다"고 했다. 이어 "사람을 표현하는 움직임이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 움직임을 시작했으니 자신이 뜻하는 바를 마음껏 펼쳐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이날 두 배우는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신구 배우는 연극인의 자세를 강조했다. "연극은 사람의 일이고, 우리들의 이야기고,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표현이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놓치면 다 허사가 되는 것이죠. 앞으로 이런 면을 자각해서 좋은 작품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박근형은 연극계의 넉넉지 않은 현실을 짚었다. "연극을 하며 마음이 편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와의 싸움이고, 작품과의 싸움이고, 모든 경쟁자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때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겹죠. 이 일을 하기 위해선 생활이 어려운 점도 각오해야 합니다. 고생길에 들어선 것을 환영합니다."
신구와 박근형은 오는 7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연극 '베니스의 상인'으로 다시 한 번 합을 맞춘다. 티켓 수익은 연극내일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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