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의 시가총액(4조3300억 달러)은 이제 일본의 GDP(4조1800억 달러)를 넘습니다. 세계 4위 경제대국의 1년 치 생산량을 기업 하나가 앞지른 장면을 보며 19세기 미국 철도주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철길은 영원하다. 철도 기업이 어떻게 망할 수가 있나.” 미국 증시의 시작은 1792년 월스트리트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24명의 상인이 버튼우드 협약에 서명하면서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주도주는 늘 그렇게 불멸을 누릴 것처럼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늘 뒷자리로 밀렸습니다.
18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초기 미국 증시의 압도적 주도주는 철도였습니다. 증시 상장 종목의 60% 이상이 철도주였던 이 시기, 밴더빌트 같은 철도왕들은 부를 독점했습니다. 철길을 깔기 위해 강철(앤드루 카네기)이 필요했고, 그 위를 달리는 기차를 위해 에너지(록펠러)가 동원되었습니다. 철도주는 물리적 연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며 주도주가 되었습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량생산 체제가 완성되자 주도주는 소비주로 이동했습니다. 포드의 자동차와 RCA의 라디오는 중산층의 삶을 바꿨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라 불리는 우량주 황금기가 도래했습니다. 코카콜라, IBM, 제록스, 월트디즈니처럼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기업들이 추앙받았습니다. 인류가 풍요와 안락을 열망하던 시대의 투영이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는 정보의 흐름을 잡아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그리고 시스코가 증시를 이끌었습니다. 또 2000년대 닷컴버블의 붕괴 후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애플의 아이폰을 매개로 모바일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애플, 아마존, 구글은 인류의 시간과 데이터를 장악하며 주도주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지능의 한계를 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질주는 19세기 철도주들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AI라는 가상 대륙의 철길을 깔고 있는 거죠.
역사적으로 주도주가 교체될 때는 늘 패턴이 반복됩니다. 영원할 것 같은 아성이 무너지는 징후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도구의 과잉과 수익의 부재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처음엔 그 기술을 만드는 도구가 팔립니다. 철도 시대엔 철길이, 닷컴 시대엔 서버가, 지금은 AI 칩이 그렇습니다. 도구를 만드는 기업이 가장 먼저 주도주가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장은 묻습니다. “그래서 돈은 언제 벌어?” 1990년대 말 시스코의 장비가 전 세계에 깔렸지만 정작 그 망 위에서 수익을 내는 서비스가 없자 버블은 터졌습니다. 도구 제작자가 실질적인 이익을 증명하지 못하는 임계점에 도달할 때 주도권은 도구 제작자에서 문제 해결사에게 넘어갑니다.
둘째는 스토리가 물리적 현실에 부딪힐 때입니다. 주도주는 대개 화려한 미래 전망으로 주가를 올립니다. 투자자들은 이야기에 돈을 맡깁니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기나 공급망 붕괴, 에너지 고갈 같은 물리적 변수가 닥치면 이야기는 멈추고 현실이 드러납니다. 1970년대 니프티 피프티 시대가 오일쇼크라는 물리적 충격에 무너지고 에너지·자원주로 주도권이 넘어갔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시장은 이야기를 사랑하지만 청구서는 언제나 현실이 보냅니다.
셋째는 독점이 규제를 부를 때입니다. 주도주는 시장을 장악하면서 동시에 적을 만듭니다. 19세기 스탠더드오일은 석유 시장을 독점했지만 바로 그 독점이 미국 최초의 반독점법인 셔먼법을 탄생시켰고 결국 강제 해체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 시장을 지배하다 반독점 소송에 발목이 잡혔고, 그사이 구글과 애플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독점의 완성은 동시에 해체의 시작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 커버스토리는 주식투자에 대해 다룹니다. 확실친 않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무언가 변곡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아직 반도체 등 AI 중심의 주도주가 짧은 시간 안에 확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이긴 합니다. 삼성전자의 57조원에 달하는 분기 영업이익만 봐도 그렇죠.
그럼에도 미래를 넘기 위해, 쉽게 말해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선 다음 주도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를 보면 단서는 늘 같은 곳에 있습니다. 현재의 주도주가 풀지 못하는 문제, 혹은 현재의 주도주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결핍입니다. AI는 전력을 먹습니다. 반도체는 소재에 목마릅니다. 지능이 흔해질수록 인간의 감각과 경험은 더 희소해집니다. 다음 왕좌는 AI가 만들어낸 결핍을 푸는 자의 것일 겁니다. 철도가 대륙을 좁혔고, 석유가 동력을 주었으며, 반도체가 지능을 구현했다면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AI 이후 인류가 가장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표 말입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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