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잔디깎기 전략

입력 2026-04-08 17:30   수정 2026-04-09 00:10

이스라엘은 2007년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와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을 이어왔다. 2008년과 2014년 지상군을 투입한 전면전에 나서며 “적의 뿌리를 뽑겠다”고 공언했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땅굴 게릴라전에 뒤통수를 맞았고, 소탕이 끝난 자리에 어김없이 재등장하는 제2, 제3의 조직을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정치·행정 조직이자 군사 조직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하마스를 무력만으로 제거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도발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이스라엘군은 결국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축적된 하마스의 군사력을 공습해 위협의 싹을 주기적으로 억제하는 현실적 해법을 택했다. ‘잔디깎기(mowing the grass) 전략’으로 알려진 갈등 관리 방식이다. 상대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군사 능력을 주기적으로 약화시켜 위협 수준을 관리하는 전략이다. 무성하게 자란 잔디만 일정 높이로 깎는 식으로 긴장을 통제한다는 의미다.

미국과 이란이 어제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간의 휴전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제시한 10개 종전안이 향후 협상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핵농축 권리 인정,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부과 등은 미국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워 난항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이번 전쟁이 ‘핵 위협 제거’ ‘중동 질서 재편’ 등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 내세운 거창한 목표와 달리 초라한 마침표를 찍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란의 군사력을 적정 수준에서 억제하고 빠지는 잔디깎기 전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다.

잔디깎기 전략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언제든 기습 타격에 나설 수 있다는 공포를 상대에게 각인시킨다. 문제는 그 자체로 다음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지난 6주간의 전쟁에서 확인했듯 중동의 불확실성 변수는 세계 경제가 떠안아야 할 비용으로 직결된다. 이 전략이 단순히 미국, 아니 트럼프 대통령 자신을 위한 비상 탈출구로 사용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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