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정치부에서 취재할 때 얘기다. 어느 날 중진 국회의원과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면서 당혹감을 느꼈다. 그가 쓰는 단어가 10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바뀌지 않아서다. 계파, 원조 측근, 공천, 배신자, 정치보복…. 그의 발언 속 등장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절반 이상은 그대로였다. 당혹감은 정치 분야를 취재한 지난 3년 내내 이어졌다. 정치인들은 수틀리면 회의장을 우르르 빠져나가고, 툭하면 상대를 향해 삿대질했다. 질문해놓고 답변을 듣지 않는 모습도 여전했다. 하루는 상대 정당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또 하루는 같은 정당의 다른 계파를 비난하는 행태도 반복됐다. 그들이 내놓는 주장, 그들이 발의하는 법안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기업이 발표하는 수치의 규모도 달라졌다. 2020년 35조원 규모 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 30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수천억원 규모 수주를 따낸 후 거창한 보도자료를 내던 조선업체들은 이제 1조원 규모 수주에 성공해도 무덤덤하다. 한국 기업인이 젠슨 황, 리사 수, 샘 올트먼, 순다르 피차이 등 글로벌 ‘빅 샷’과 만나는 것도 흔한 뉴스가 됐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가 D램을 장기 공급받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내는 장면도 이젠 익숙해졌다.
수시로 기업인들을 국회로 부르는 행태도 여전하다. 해마다 열리는 국정감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당은 지난달 중동사태 관련 긴급 간담회라는 명목으로 10명이 넘는 기업인을 불렀다. 간담회는 90분 정도 진행됐는데, 정작 30분은 의원들의 ‘인사말’에 할애됐다.
한국 정치판은 변함이 없지만,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정치가 기업만큼 빠르게 변화하길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정치가 생존 경쟁을 위해 뛰고 있는 기업들이 덜 고단하도록 ‘조금이라도’ 돕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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