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자영업자 A씨는 지난해 말 카드값이 밀리자 자동차담보대출로 1300만원을 빌렸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신용대출이 막힌 상황에 ‘타던 차 그대로’ ‘당일 입금’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곧바로 대출을 신청했다. 금리는 연 12%대였다. A씨는 “카드론, 현금서비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금융)까지 안 알아본 곳이 없다”며 “생계비와 기존 대출 원리금 부담은 커지는데 돈을 빌릴 곳이 없어 마지막 자산인 자동차까지 담보로 잡혔다”고 토로했다.
서민금융의 ‘최후 보루’로 불리는 차담보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의 연이은 가계대출 규제로 금융회사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자 대출 수요가 차담보대출로 쏠려서다. 금융당국이 이달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한층 강화해 중·저신용자 대출이 더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KB·하나·우리금융·JB우리캐피탈 등 5개 주요 캐피털사의 지난해 말 차담보대출 잔액은 2조8074억원으로 1년 전보다 46% 늘었다. 저축은행업권 차담보대출 잔액 약 2조3000억원을 더하면 2금융권 차담보대출 규모는 5조1000억원을 넘어선다. 가계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로 지목된 P2P 대출 잔액 1조6072억원의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차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은 평균 80% 안팎이다. 이를 고려하면 6조4000억원 규모 차량이 담보로 잡혀 있는 셈이다. 중고차 한 대 가격을 1500만원으로 가정하면 담보 차량은 약 43만 대에 이른다. 차담보대출은 소득 요건이 까다롭지 않고 신용점수가 낮아도 비교적 대출이 쉬워 자금 사정이 어려운 이들이 찾는 마지막 급전 창구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대출 수요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차면 신용대출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6·27 대책’ 이후 신용대출 한도마저 연 소득 이내로 묶이자 상대적으로 대출 승인율이 높은 차담보대출이 우회 통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저신용자 신용대출은 빠르게 줄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KCB 기준 신용평점 하위 20%인 저신용자 신용대출 공급액은 30조원으로 전년보다 11% 줄었다. 전체 신용대출 공급액 감소율(9.1%)보다 감소폭이 더 컸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금융사들이 총량 관리에 들어가면 저신용자 대출 비중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며 “2금융권에서 밀려난 수요가 차담보대출로 이동하면서 증가세가 가팔라진 것”이라고 했다.
중·저신용자의 ‘대출 절벽’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 1일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통해 올해 전 금융권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1.5%로 지난해 1.7%보다 낮췄다. 이에 따라 올해 신규 대출 공급은 지난해보다 9조원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금융권에서는 대출 중단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생계자금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1만7538건으로 13년 만에 최대였다.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차담보대출이 급증하는 것은 취약계층이 그만큼 한계 상황에 몰렸다는 신호”라며 “생계형 대출과 일반 신용대출을 구분해 관리하는 보다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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