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수호해온 해상 질서가 이란 전쟁을 계기로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란이 세계 최대의 에너지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 체계를 공식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의 핵심 전제였던 공해(公海)의 공공재적 성격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항행의 자유’ 작전(FONOP,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을 전개해 왔다. 이는 특정 국가가 국제법을 어기고 바닷길을 독점하거나 영유권을 주장할 때, 미 군함을 해당 해역에 진입시켜 ‘이 바다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해’임을 물리적으로 증명하는 군사 활동이다.
이른바 테헤란 톨게이트의 등장은 전 세계 경제에 보이지 않는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우선 통행료 징수와 선박 검문으로 인해 공급망 마비와 배송 지연이 상시화되고 있다. 또한 유조선에 부과되는 통행료와 급증한 전쟁 보험료는 고스란히 글로벌 소비자의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전가되는 상황이다.
특히 이란이 통행료 결제 수단으로 위안화와 암호화폐를 채택하면서, 해상 무역의 기축 통화였던 달러 패권마저 도전받는 형국이다. 이는 해상 무역 결제 시스템에서 달러 중심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호르무즈 해협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란의 시도가 안착할 경우, 남중국해 등 주요 분쟁 지역에서 특정 국가가 해상 주권의 무기화를 시도하며 통행료를 징수하는 유료 해상 시대가 도미노처럼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안전하고 저렴했던 자유항행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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