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원 대만 중국국민당 주석이 12일 5박6일의 방중 일정을 마쳤다. 미·중 패권 경쟁, 이란 전쟁 등이 맞물린 시점에서 이뤄진 10년 만의 국공회담(중국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의 영수 회담)이라 정 주석의 정치적 노림수와 전략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외교가에선 이번 정 주석의 방중이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닌 대만 내부 정치 구도와 경제계 이해관계, 2028년 대만 총통 선거 등을 염두에 둔 하나의 정치적 승부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공 양당 최고위급 교류는 2005년 롄잔 당시 국민당 주석의 방중을 계기로 복원됐다. 이후 마잉주 총통 시기에는 경제 협력 확대와 함께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가 비교적 안정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2016년 민주진보당 집권 이후 중국은 대만 정부와 공식 소통을 사실상 중단했다. 중국의 군사적 압박도 강화됐다.
대만 입법원(국회)의 '여소야대' 지형 속에서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줄곧 중국 견제와 대미 안보협력 강화라는 핵심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주석이 '국공 채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미국과 협력 강화와 군사력 증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민진당과 달리 중국과 대화와 교류를 통해 충돌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란 전쟁을 계기로 대만인들 사이에 '전쟁 공포'가 확산된 틈을 타 정 주석이 이번 방중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정치 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순한 친중 행보가 아니라 '안정적인 관계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앞세운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설명이다.
국민당은 민진당이 추진하고 있는 400억달러(약 59조원) 규모 특별 국방예산안 등 안보 관련 정책을 강력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 주석이 중국에는 대화 가능한 파트너로, 미국에는 완충 역할로, 대만 유권자에게는 평화를 내세운 선택지로 자신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장제스 총통 시절부터 국민당의 근간을 이뤘던 '반공' 철학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밀착으로 변모시켰단 해석이다.
실제 지난 10일 이뤄진 회담에서 시 주석은 정 주석과 14초간 긴 악수를 하면서 대만 내부 친중 세력에 강력한 지지 메시지를 보냈다. 회담에서도 비교적 온건한 발언으로 대만 내부 반발을 피하도록 했다.
시 주석은 통일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평화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수위 조절을 했다. 민진당을 배제하고 국민당 등과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치둥타오 싱가포르 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싱가포르의 중국 일간지 연합조보에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의 모두발언은 이전 국공회담과 비교해 모호한 수준이었다"며 "통일을 직접 호소하기보다는 대만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 내 경제적 이슈도 정 주석의 방중 행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의 화학, 자동차, 기계 산업은 중국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민진당 체제에서 양안 관계가 악화하면서 대만 기업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정 주석을 이런 상황을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 했다. 정 주석은 지난 9일 양안의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불리는 상하이 양산항을 방문해 대만 기업인들을 만나 "2028년 정권 교체를 통해 경제적 고통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정 주석의 이런 행보가 대만 사회 전반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대만 주요 언론과 정치권에선 "중국의 통일 프레임에 이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정 주석의 이번 방중 행보가 핵심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도층 확장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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