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0배' 중국발 대량생산 습격에…삼성·LG '초비상'

입력 2026-04-12 18:20   수정 2026-04-12 18:22

중국이 전기차에 이어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에서도 물량 공세에 본격 나서고 있다. 태양광 등으로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기 위한 세계 ESS 수요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는 ESS용 배터리 생산 능력 확충에 나선 한국 배터리 기업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은 캐즘(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실적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ESS용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공격적 증설 나선 中
12일 중국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주요 배터리 제조 기업은 올 들어 600기가와트시(GWh)를 웃도는 ESS용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미국에 설치된 ESS 용량(58GWh)의 열 배 이상이다. 1GWh 배터리는 약 75만 가구에 1년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중국 가오궁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기업 19곳이 신규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건설에 총 1800억위안(약 39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CATL을 비롯해 고션하이테크 등 중국 대표 기업이 포함됐다. 투자로 확충되는 900GWh 규모의 연간 생산능력은 ESS용 70%, 전기차용 30%로 채워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에서 시작된 배터리 경쟁이 전력 인프라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ESS가 새로운 주전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차량 구동을 위해 고에너지 밀도·고출력·급속충전 성능을 중시한다. 반면 ESS용 배터리는 전력 저장을 위해 긴 수명과 안정성·비용 효율을 우선으로 설계된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인공지능(AI)산업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확충될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 있다. AI용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늘어난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가 채우는 과정에서 ESS 수요도 따라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은 화력발전소와 달리 시간대에 따라 전력 생산량의 격차가 커 발전한 전기를 저장하기 위한 ESS가 필수적이다.

중국 재생에너지 관련 업체 하이너에너지의 샤융 대표는 “AI 붐이 재생에너지 수요 급증을 견인하고 있다”며 “ESS 인프라도 빠르게 증가할 것이고, 다양한 글로벌 투자자가 이 시장에 투자하려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리튬 금속 생산 기업인 중국 간펑리튬도 최근 투자자 회의에서 “AI 컴퓨팅과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전력 소비 트렌드가 ESS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다”고 했다.
◇또다시 韓 배터리 발목 잡나
중국 기업들은 이미 ESS용 배터리 시장에서 높은 시장 장악력을 보이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S 수요는 550GWh로 전년 대비 79% 증가했다. CATL이 30%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하이티움과 이브에너지 등 중국 기업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중국 정부도 ESS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지난해 중국 본토의 신규 ESS 용량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174.2GWh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들어 전체 매출에서 ESS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20%에서 40% 중반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기차 캐즘에 대응해 ESS 시장에서 성장 기회를 노리겠다는 이유에서다. 삼성SDI 역시 올해 실적 성장의 축을 ESS로 삼고 전년 대비 50%의 매출 확대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생산시설 확충은 ESS용 배터리 시장의 경쟁 강도를 높여 제품 단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ESS는 결국 전력 인프라여서 단가가 중요하다”며 “중국식 대량 생산 모델로 배터리 가격이 떨어지면 다른 시장 참여자들도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신규 ESS용 배터리 공장은 이르면 올해 말부터 완공돼 내년부터 시장에 본격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력 인프라와 관련해 중국 기업에 대한 통상 장벽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한국 배터리 기업이 반사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ESS용 배터리 시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산 제품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서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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