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천연 다이아몬드를 사도 될까. 세계 최고가 루비는 왜 반 토막이 났을까. 그리고 왜 지금 자산가들은 가방 대신 보석을 사기 시작했을까.”
최근 럭셔리 시장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스위스 리치몬트 그룹은 최근 회계연도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는데, 성장을 이끈 축은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등 주얼리 부문이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주요 백화점 럭셔리 주얼리 매출은 25~30% 늘어 전체 매출 증가율(1~2%)을 크게 웃돌았다. 젊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이른바 '보석 테크'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기다.
신간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추적한 책이다. 금은 시세가 있지만 보석에는 이야기가 붙는다.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산지와 소유 이력, 거래 경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어떤 루비는 8년 만에 가치가 반 토막 나기도 한다. 보석의 가격은 스펙만이 아니라 서사와 시장 구조가 겹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기준을 갖추면 보석은 취향이자 착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게 책의 핵심 메시지다.
저자 윤성원은 뉴욕 미국보석감정원(GIA)에서 감정·디자인·세공 전 과정을 공부한 뒤 20여년간 글로벌 경매 시장과 광산, 브랜드 현장을 오가며 보석 산업을 연구해온 하이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직업이지만 생산자와 판매자, 소비자를 스토리로 연결하는 일종의 '보석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해 왔다.
그는 보석을 단순한 사치품이 아닌 경제의 언어로 설명한다. 윤성원 한양대 보석학전공 겸임교수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만났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보석감정사이면서 디자인, 세공, 유통까지 보석을 둘러싼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보석 제작·판매 쪽이 아닌 '하이 주얼리 스페셜리스트', 즉 보석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국내에선 잘 안 알려진 직업이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보석 감정뿐 아니라 디자인과 세공 등 전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보석 산업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됐죠. 당시엔 관련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직접 제작과 유통, 리테일 판매에 뛰어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종로 시장을 포함해 국내 보석 산업의 구조와 소비자 특성을 현장에서 폭넓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쯤 보석을 알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국내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고 보석이 여전히 '사치품' 중심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체감했습니다. 단순히 판매나 디자인을 넘어 보석의 가치와 구조를 알리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뉴욕에서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과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점차 하이 주얼리와 럭셔리 분야 강의로까지 영역이 확장됐어요.
국내 보석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이 보석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 정직한 판매자가 인정받는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책을 쓰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보석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지식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럭셔리 브랜드의 판매자 교육과 소비자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판매 현장과 소비자 인식이 함께 변화해야 시장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책이 브랜드 내부 교육 자료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어 의미 있게 보고 있습니다. 보석을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대상, 공부할 수 있는 분야로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 GIA에 진학해 보석을 공부했습니다. 보석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요?
"대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던 시절, 비교적 이른 시점에 조직 중심의 업무 방식이 제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백화점에 입점한 티파니 매장에서 작은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것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금이나 부동산처럼 가격의 기준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대상과 달리, 보석은 왜 그렇게 가치가 형성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아름답다는 인상도 강하게 받았죠.
마침 지인을 통해 뉴욕이라는 큰 시장에서 보석을 공부하는 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계기로 GIA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직업으로 삼겠다는 마음보다 새로운 분야를 제대로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GIA에 들어가 보니 보석 산업이 상당히 가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세계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집안에서 보석업을 이어온 경우였고, 저는 관련 배경이 전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축되기도 했죠.
하지만 다이아몬드 감정 과정을 시작하면서 공부 자체가 매우 재밌었고, 특히 유색 보석에 깊이 매료됐습니다. 자연의 원석이 세공과 디자인을 거치며 전혀 다른 가치로 변화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색과 빛, 커팅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보석을 배우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세계적인 경매사가 가까이 있어 공부 초기부터 최고급 하이 주얼리를 직접 접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이후 하이 주얼리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강의하는 기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책에서는 보석을 실물자산의 관점에서 조망하며 시장과 업계 얘기를 본격적으로 다뤘습니다. 어떻게 집필하게 되셨습니까.

"이전에는 보석의 역사나 인문학적 맥락 중심으로 책을 써 왔는데, 코로나19 시기 럭셔리 브랜드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1대1 강의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건 보석의 아름다움이나 역사, 문화적 의미보단 가격과 시장구조였죠. 소비자들이 보석을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시장 구조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보석을 '경제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백화점 주얼리 매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시장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충분한 정보 없이 구매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느꼈습니다. 또 온라인에는 판매자 중심의 정보가 많아 이 시장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보석의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보석을 자산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게 됐습니다. 보석을 '광산에서 손가락까지(From Mine To Finger)'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산지와 유통 구조, 가격 형성 과정을 함께 설명하고 싶었어요. "
▶ 10여년간 럭셔리 브랜드 VIP 고객을 대상으로 강연해 오셨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스타트업 창업자나 인플루언서, 30대 남성의 참여가 두드러진다고 했습니다. 최근 고객층에도 변화가 있습니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강연 참여자의 구성이 눈에 띄게 다양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자산가, 이른바 '올드 머니'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스타트업 대표나 IT 업계 종사자,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 이른바 '뉴 머니' 계층이 함께 섞여 들어오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이들은 단순 소비 목적뿐 아니라 대체 자산 관점에서도 보석에 관심을 보입니다. 큰 금액이 들어가는 만큼 공부한 뒤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싶다는 태도가 강합니다. 예전에는 고가 주얼리 소비가 비교적 조용히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자신의 관심과 소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젊은 층이 늘어난 것도 특징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변화는 남성 참여자의 증가입니다. 과거에는 여성 중심의 강의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남성들도 자산과 취향의 관점에서 보석을 이해하려는 수요가 분명히 늘었죠."

▶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걸프해역 영공이 닫히면서 보석 시장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보석 거래의 핵심 허브로 부상한 두바이가 타격이 크다고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도 시장엔 악재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보석 시장은 소비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물류와 거래 허브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입니다. 특히 두바이는 아프리카 산지와 인도 가공 시장 사이에 위치한 글로벌 다이아몬드 거래 허브로, 원석 입찰과 재유통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최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으로 항공 이동과 출장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물류 흐름이 크게 제약받았고, 실제로 두바이를 거점으로 한 광산 회사들과의 일정도 중단된 상태입니다. 안전한 거래 도시라는 두바이의 장점도 일정 부분 흔들린 상황이죠.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두바이의 허브 기능이 일부 다른 지역으로 분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도나 아프리카 산지 인근에서 직접 거래를 진행하려는 움직임이나, 과거 중심지였던 벨기에 안트베르펜이 다시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두바이의 지리적 이점이 커 중심 기능이 단기간에 약화하지는 않겠지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제재 역시 공급 구조와 거래 경로 재편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변수는 가격뿐 아니라 유통 구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죠."
▶ 미국의 관세 정책도 보석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요.
"맞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소비 시장인데, 전 세계 연마 다이아몬드의 약 90%가 인도 수라트에서 가공됩니다. 산지에서 채굴된 원석이 인도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인도에 대한 관세 정책 변화는 곧바로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최고급 다이아몬드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이나 이스라엘, 뉴욕 등에서도 가공되지만 일반적인 상업용 제품은 대부분 인도를 거칩니다. 이런 구조에서 관세가 강화되면 미국 내 소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석 산업은 산지, 가공지, 거래 허브, 소비 시장이 연결된 글로벌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구조라, 역사·경제·정치·문화와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죠."
▶ 지난해 주요 백화점 럭셔리 주얼리 매출이 전년 대비 25~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매출 증가율이 1~2%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폭인데요. 국내 보석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또 명품 소비의 무게중심이 가방과 의류에서 주얼리로 이동하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배경이 무엇인가요.
"이 현상은 한국만의 특징이라기보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입니다. 최근 금값 상승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영향으로 주얼리를 실물자산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금에 대한 관심이 보석으로 확장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세대 변화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과거에는 가방이나 의류 중심의 명품 소비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얼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유행 주기가 빠른 패션 상품과 달리 보석은 소재의 내구성과 희소성이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또 최근 MZ세대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한국 시장도 이제 본격적으로 주얼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책 제목처럼 '금 대신 보석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석이 재테크 관점에서 금보다 어떤 점에서 나은가요.
"금은 국제 시세가 비교적 명확하게 형성돼 있어 개인이 프리미엄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보석은 산지와 희소성, 디자인, 브랜드, 소장 이력 등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보석이라도 개별성이 강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가치가 형성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차이죠.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이동성과 휴대성입니다. 보석은 매우 작은 부피에 큰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자산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지금도 지정학적 위기나 자산 이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특성은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보석은 시장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완만하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주식처럼 단기간에 급등락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보유하면서 가치를 축적하는 자산에 가깝습니다. 와인이나 예술품처럼 시간을 두고 접근하는 '슬로우 자산'의 성격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착용이 가능하죠. 자산이면서 동시에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재라는 점에서 금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유하는 동안 미적 만족과 사용 경험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실물자산과 구별되는 특징이죠."

▶ 2022년 이후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은 2022년 초 고점을 찍은 뒤 상당 폭 조정을 거쳤습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빠른 확산과 중국 등 주요국의 혼인율 감소, 글로벌 소비 둔화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다만 공급 측면을 보면 다른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드비어스와 알로사 같은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감산에 나서고 있고, 글로벌 생산량도 최근 몇 년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요 광산의 노후화가 진행되고 신규 광산 발견도 드문 상황이어서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감소가 가격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처럼 전반적인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국면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요.
특히 2캐럿 이하의 이른바 예물용 시장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직접 경쟁하는 구간이라 가격 압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육안으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품질이 개선된 데다 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 회복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2캐럿 이상 고가 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 시장은 애초에 가격 경쟁보다 희소성과 자산성을 중시하는 수요가 중심이어서, 상대적으로 가격 방어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직접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영향이 제한적이죠. 오히려 희소성이 강조되면서 천연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분명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현상은 과거 천연 진주 시장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양식 진주가 대중화된 이후 한동안 천연 진주의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소성이 다시 부각되며 자산 가치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결국 핵심은 희소성입니다.
또 중요한 차이는 재판매 가치입니다. 랩 다이아몬드는 현재로서는 재판매 가치가 거의 형성되지 않는 반면, 천연 다이아몬드는 일정 부분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유지됩니다. 장기 보유나 상속까지 고려한다면 천연 다이아몬드를 선택하려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두 시장은 용도가 다른 영역으로 점차 분화되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다이아몬드 시장이 '체제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하셨습니다.
"다이아몬드 시장이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드비어스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2018년 드비어스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캐럿당 800달러라는 고정 가격으로 출시한 사건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당시 천연 1캐럿 다이아몬드가 우리 돈으로 700만~1000만원대에 거래되던 상황에서, 100만원 수준의 훨씬 낮은 가격 기준이 공개적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드비어스가 우리를 배신했다'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였죠.
드비어스는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을 만들어 온 기업이기 때문에 랩 다이아몬드 역시 충분히 관리 가능한 별도의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물 시장까지 빠르게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이 정도 가격에도 생산될 수 있다'는 기준을 시장에 제시한 셈이 됐습니다. 이후 다양한 업체가 진입하면서 가격 하락이 가속화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기업이 천연 다이아몬드의 희소성과 랩 다이아몬드의 저가 전략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드비어스도 보석용 랩 다이아몬드 사업에서 철수하고 산업용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죠.
과거에는 공급과 마케팅을 주도하던 드비어스의 독점적 구조가 시장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점유율이 30%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그런 영향력이 약해졌습니다. 여기에 혼인율 감소와 소비 구조 변화까지 겹치면서 다이아몬드 시장은 구조적으로 재편되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산업이 역사적인 분기점을 지나고 있는데, 최근 매각 절차에 들어간 드비어스의 다음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도 시장의 눈길이 쏠려 있죠."

▶ 최근 종로에서 "물건이 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시장 변화가 체감되나요.
"가격 조정이 크게 나타난 이후라 아직은 어려운 시기지만, 최근에는 하락 폭이 완만해지면서 저점에 가까워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종로 시장에서도 그동안 금고에 묶여 있던 스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일부 거래 흐름이 살아나는 초기 단계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최근 국내 혼인율이 소폭 반등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1캐럿 안팎의 예물용 시장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직접 경쟁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습니다."
▶ 그렇다면 최근 보석 시장의 관심은 어디로 이동하고 있습니까.
최근에는 컬러 스톤, 즉 유색 보석으로 관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 같은 3대 유색 보석은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수요가 늘었고 가격도 전반적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루비는 희소성과 상징성이 모두 강해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파이어는 파란색이 대표적이지만 노란색이나 핑크색 등 다양한 색이 있어 선택의 폭이 넓고, 에메랄드는 녹색 특유의 개성 때문에 꾸준한 수요가 있습니다.
유색 보석의 인기는 단순한 투자 대상이라기보다 색과 빛이 주는 상징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붉은 루비는 열정과 권위를, 파란 사파이어는 하늘과 신성함의 이미지와 연결돼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선호돼 왔습니다. 녹색 에메랄드는 중동과 인도 지역에서 특히 선호도가 높은 색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루비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면 남편과 자식이 잘된다는 속설이 있어서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많이 끼기도 하죠.
이처럼 유색 보석은 희소성뿐 아니라 문화적 상징성과 개인의 취향이 함께 작용하는 시장입니다. 인간이 의미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그걸 계속 쫓고 있는 셈이죠."
▶ 최근 결혼 예물 트렌드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습니까.
"유색 보석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결혼 예물 시장에서는 여전히 다이아몬드 중심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처럼 예물 세트를 크게 맞추기보다 커플링 중심으로 간소화되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천연 다이아몬드 선호가 더 강합니다. 결혼 예물은 상징적 의미가 크고 재판매나 상속까지 고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에선 결혼 예물용 다이아몬드의 60% 이상이 랩그로운일 정도로 빠르게 확산 중입니다. 큰 캐럿을 선호하는 문화와 친환경·윤리적 소비 성향에 대한 관심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 다이아몬드 커팅 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최근에는 오벌 컷, 에메랄드 컷, 페어 컷처럼 세로로 길어진 형태의 '팬시 컷' 다이아몬드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빛 반사가 가장 뛰어나도록 설계된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이 가장 널리 사용돼 왔고 재판매 가치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다만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모두 같은 반지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결혼 예물에서도 다양한 형태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죠."

▶ 미술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급등했다가 최근 조정을 겪고 있습니다. 자산 관점에서 보면 주얼리는 오히려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요?
"최근 럭셔리 실물자산 시장을 보면 자산별 흐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글로벌 럭셔리 실물자산 지수를 보면 미술 시장은 코로나 이후 급등한 뒤 조정 국면에 들어섰고, 고가 와인도 일부 구간에서는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주얼리와 시계는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리치몬트가 최근 회계연도에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는데, 그 중심에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같은 하이 주얼리 브랜드가 있습니다. 자산가들이 실물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보석 비중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장기 흐름을 보면 금 가격 상승과 함께 럭셔리 실물자산 전체의 가치도 꾸준히 확대돼 왔는데, 그 안에서 주얼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자산군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향후 5년 내에도 글로벌 자산가들의 투자 자금이 주얼리 시장으로 추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죠."
▶ 책을 읽으며 보석 시장이 생각보다 투명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반 소비자가 더 저렴하게, 합리적으로 구매할 방법이 많지 않은 시장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예를 들어 스리랑카가 사파이어로 유명하다고 해서 여행객이 산지에서 직접 보석을 구매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안전할까요.
"현지 산지에서 직접 보석을 구매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정부 인증을 받은 상점이라 하더라도 일반 소비자가 품질이나 처리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죠. 저 역시 현지에서 구매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이 있고요.
보석 시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보 격차가 큰 분야입니다. 얼마든지 품질을 다르게 보이게 하거나 가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현지에서 싸게 산다'는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책에서도 산지 직구를 낭만적인 선택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합리적인 구매를 위해서는 어디서 싸게 살 수 있는지를 찾기보다 시장 구조와 품질 기준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책에서 감정서 읽는 법에 대해서도 다뤘지만, 감정서가 있어도 일반 소비자가 진위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감정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감정기관마다 공신력 수준이 다르고 일반 소비자가 감정서의 진위나 내용을 정확히 판별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판매처에서 구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안전한 방법입니다. 반드시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만 구매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뢰할 수 있는 보석상을 정해 장기적으로 관계를 쌓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종로·남대문 같은 국내 시장에도 믿을 만한 업체들이 있고, 협회 가입 여부나 거래 이력 등을 확인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보석도 와인이나 미술처럼 시간을 두고 안목을 키우고 학습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 책에는 시장뿐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배경도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참고문헌도 상당한데, 자료 조사는 주로 어떻게 하시나요. 추천 도서를 부탁드렸는데, 소설 중에선 <위대한 개츠비>를 꼽아주셨어요.

"평소에도 보석 관련 서적과 산업 리포트, 논문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자료를 찾아보는 편입니다. 보석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역사·경제·문화·정치가 함께 작용하는 분야라 감정이나 디자인 지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위대한 개츠비>를 추천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주얼리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로 꼽히는 '아르데코 시대'의 분위기와 소비문화가 이 작품에 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재즈 시대의 파티, 기하학적 장식, 대담한 색 조합….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부쉐론 같은 메종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디자인 언어를 완성한 때이기도 하죠. 그 시대의 욕망과 에너지를 먼저 느껴야 디자인이 보입니다. 실제로 경매 시장에서도 아르데코 시대 주얼리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그 시대의 미학과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소설이 좋은 참고가 되죠."


1.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돈과 국가, 종교가 인간이 공유한 믿음 위에 형성된 것처럼, 보석의 가치 역시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상징과 서사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다. 젬스톤의 의미와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2. <Royal Jewels: From Charlemagne to the Romanovs> | 다이애나 스카리스브릭 외- 샤를마뉴부터 로마노프 왕조까지, 유럽 왕실 주얼리의 역사를 풍부한 도판과 함께 다룬 책. 역사 속 사례를 통해 소유 이력과 정치적 맥락 같은 프로비넌스가 보석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3. <컬러의 힘> | 캐런 할러- 인간은 색을 인지하는 순간 거의 즉각적으로 호불호를 결정한다. 색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유색 보석의 매력과 상징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4.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심우찬- 회화·건축·패션·주얼리·마케팅을 아우르며 벨 에포크 시대의 문화와 산업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주얼리를 당대의 사회적·브랜딩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 | 강가희- 전문 지식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으로, 낯선 분야도 끝까지 따라올 수 있게 쓰는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줬다.
6. <은빛 피렌체> |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피렌체를 배경으로 권력·자본·예술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아름다움이 어떻게 산업과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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