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야근도 칼같이 수당 줍니다"…취준생 홀린 파격 복지 [인터뷰]

입력 2026-04-14 14:17   수정 2026-04-14 17:12


'반도체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 제조사들이 경력 엔지니어를 대거 흡수하면서 장비사와 소재사까지 숙련 인력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에게 인재 확보는 '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렵게 뽑은 인력을 '어떻게 붙잡아 둘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2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에서도 이런 변화가 뚜렷이 감지된 가운데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부스 수백 곳 가운데 유독 젊은 관람객들 발길이 몰린 곳이 있었다. 도쿄일렉트론(TEL)코리아 전시관이다. "10분 단위로 초과근무(OT) 수당을 지급한다"는 문구 앞에서 취업준비생들이 발걸음을 멈췄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를 설계한 인물로 알려진 이혜진 도쿄일렉트론코리아 부사장(사진)은 3년여 전 최고인사책임자(CHRO·Chief Human Resources Officer)로 합류한 회사의 첫 여성 임원이다. 장애인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사내 카페, 그룹 최초의 사내 어린이집, 직급 대신 닉네임을 쓰는 수평적 호칭 문화 도입까지 그는 보수적으로 알려진 일본계 기업의 조직문화 변화를 주도해 왔다.


다음은 이 부사장과의 일문일답.

▶ 도쿄일렉트론코리아 CHRO로 합류하게 된 계기와 가장 먼저 바꾸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을 가장 큰 자산으로 본다는 걸 늘 강조하는 회사였어요. 같은 반도체 업계에 있다 보니 그 모토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변화하고 싶어 하는 모멘텀이 있었어요. 제가 가진 인사 철학과 반도체 업계 경험이 그 변화의 의지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합류하게 됐습니다.

합류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생각들을 '전략화'하는 것이었어요. 복리후생이든 보상이든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따로 설득하면 굉장히 어렵거든요. 큰 그림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프로그램이 그 방향의 액션 플랜(action plan·실행 계획)이라는 걸 먼저 공유하고, 방향만 맞으면 그 뒤 설득은 훨씬 쉬워집니다. 복리후생을 세 가지 축으로 전략화했어요. 시장 경쟁력, 가족 친화,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프로그램입니다."

▶ 반도체 장비 업계는 남성 중심 조직문화가 강한 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 CHRO로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국 기업 중에 남성 중심이 아닌 기업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도쿄일렉트론이 그에 비해 특별히 더 남성 중심이었다고 하기보단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첫 여성 임원인 건 맞습니다. 남성 임원들이 여성 임원과 일해본 경험이 없다는 게 사실이었고, 그건 불편함이나 걱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경험이 없다는 '사실의 문제'였어요. 그 전제를 서로 인정하고, 저는 여성이기 때문에 선발된 게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인사 전문가이기 때문에 입사한 거라는 자세로 시작했습니다. 전문성이 먼저 보이고, 그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여자구나, 정도였죠."

▶ 포괄임금제가 업계 관행처럼 굳어진 상황에서 '10분 단위 OT(초과근무) 수당' 지급 시스템이 눈에 띕니다.

"이 제도는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있던 좋은 제도예요. 반도체 엔지니어의 업무량은 상당히 많습니다. 거기에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동기가 당연히 떨어지게 돼 있고요. 고객 앞에 서 있는 엔지니어의 10분은 다른 회사의 1시간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10분을 '30분이 안 됐으니까'라고 상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10분이 회사에서 정확하게 보상할 만큼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제도라고 봐요. 현금 보상의 의미가 아니라 가치에 대한 인정입니다."

▶ 도쿄일렉트론코리아에서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할 때 얻는 차별화된 경험과 기회가 있다면요.

"인재 전쟁이 치열한 시대입니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그 선택지 중 나에게 맞는 회사를 고르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회사도 마찬가지고요. 오거나이제이션 핏(organization fit·조직 적합성)에 맞는 인재가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게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강점은 세 가지예요. 첫째는 반도체 시장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성장이 보장된 인더스트리(industry·산업)입니다. 둘째는 글로벌 기업 내에서 도쿄일렉트론코리아가 갖는 위상이에요. 저희는 전 세계 도쿄일렉트론 지사 중 매출 규모와 중요도 측면에서 1~2위를 다투는 조직입니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법인이지만 본사에서도 그만큼 주목하는 곳이에요. 셋째가 사람 중심의 경영 철학입니다. 기술 중심, 고객 중심으로 운영되는 회사들이 대부분인데 저희의 차별화 포인트는 정말 사람 중심, 사원 중심이라는 거예요. 모든 정책이 그 철학 안에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입사 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아요. 해외 파견, 해외 교육 기회는 물론이고 대학원이나 박사 과정을 지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장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는 분들이라면 여기서 충분히 그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어제(13일)부터 공개 채용이 시작됐는데 어떤 인재를 찾나요?

"일단 내년 초 용인 R&D(연구·개발) 센터(TTCK-Y) 가동 등을 앞두고 성장을 함께 이끌 인재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죠. 필드 엔지니어(FE), 프로세스 엔지니어(PE) 등 기술 직무는 물론 안전·소방·시설 등 인프라 직군까지 전 부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전 어떤 사람이 저희 회사를 선택하면 좋을까에 대한 답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 지원자들의 스펙이 상향 평준화됐어요. 지금은 AI 시대인 만큼 AI와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이 핵심이에요. 그러려면 열린 마음과 열린 대화가 가능해야 하고, 그건 결국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흐름이 왔을 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뛰어드는 사람, 내가 왜 이 일을 하려 하는지 '이유'가 분명한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으면 합니다."

▶ '비즈니스 네임'을 전면 도입했다고 들었는데 보수적인 일본계 기업 문화에서 어떻게 안착했나요.

"직급 호칭에서 오는 문제들이 있어요. 위계질서에서 오는 권력 간 거리, 의견을 말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비용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걸 '스피킹 코스트(speaking cost·발언 비용)'라고 표현하는데, 그걸 없애기 위해 닉네임을 도입한 거예요. 편안하게 소통하자는 게 목적이고, 결국은 의사결정의 질과 속도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반도체 현장에서는 의사결정의 질과 속도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선배니까, 매니저니까 말을 못 하게 되면 그 두 가지가 떨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지금 그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은 아무도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 사내 카페 '텔아시스(TELasis)'를 직접 주도했는데, 장애인 바리스타 직접 고용과 수익금 전액 기부를 내세운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냥 '이런 프로그램 하겠습니다'라고만 했다면 설득하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전략 방향을 먼저 얼라인(align·방향 일치)한 상태였어요. 텔아시스는 DE&I 중 장애인 고용에 해당하고, 수익금 기부는 ESG의 소셜 영역에 해당합니다. 큰 틀이 맞으니 그 안의 프로그램은 설득이 어렵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직원들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기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인 기부금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이어지고, 직원과 가족이 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내 커피 한 잔이 나와 가족에게 영향을 주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그룹 최초로 사내 어린이집 '킨더텔(KinderTEL)' 개원을 주도하셨는데요. 직원 반응은 어떤가요?

"올 3월에 오픈했기 때문에 이직률 변화 등 가시적인 데이터를 지금 말씀드리기는 이릅니다. 다만 이 어린이집이 생긴 과정 자체가 의미 있어요. 저희가 3년 전에 만든 '주니어보드'라는 소통 채널이 있는데, 거기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어린이집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게 정책으로 연결됐거든요. 직원의 목소리가 전달돼 회사 정책으로 만들어진 케이스입니다. 국내 최초는 아니지만 도쿄일렉트론 글로벌 최초였다는 게 저희로서는 의미가 있고요. 아이를 믿고 맡기면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른 해외 지사들이 텔라시스와 킨더텔 모두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도쿄일렉트론코리아의 프랙티스(practice·실천 사례)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 '주니어보드'가 뭡니까.

"리텐션(retention·인재 유지)과 인게이지먼트(engagement·구성원 몰입도)를 높이려면 소통이 핵심이에요. 쌍방향이어야 하고요. 주니어보드는 바텀업(bottom-up·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채널입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진에게 전달돼 정책이 되는 구조예요. 1기를 오픈하자마자 예상 인원의 몇 배가 지원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요즘 세대가 소통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있었던 거죠. 지금 3기까지 운영 중인데, 30분 단위 연차 사용 제안, 생일 휴가 신설, 복지 포인트로 휴가를 구매하는 엑스트라 휴가 제도 등이 다 주니어보드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입니다. 올핸즈 미팅은 반대로 탑다운(top-down·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채널이에요. 연 1~2회 경영진이 본사 방향성, 도쿄일렉트론코리아의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이 두 채널을 양쪽으로 열어놓은 거죠."

▶ 앞으로 조직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으신가요?

"'더 베스트 컴퍼니 인 코리아(한국 최고의 기업)'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첫째는 실패를 존중하는 문화예요. 지금은 성공 중심으로 정말 잘 해오고 있어요. 그런데 실패를 존중하지 않으면 도전하려는 의지가 꺾일 수 있어요. 실패했을 때 책임을 진다는 게 자리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그 실패에서 배운 것으로 다시 성공할 기회를 주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함께 가는 구조예요. 성장한 직원이 밖을 둘러봤을 때 '도쿄일렉트론코리아가 낫네, 내가 있어야 할 곳이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리텐션이라고 봅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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