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에 그 땅의 기운이 깃들듯, 브랜드에도 저마다의 ‘테루아(Terroir)’가 존재한다. 어떤 도시에서 태동하고 어떤 환경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는지가 그 브랜드의 본질적인 성격을 결정짓는다. 첫 번째로 향할 목적지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의 고향인 이탈리아다.

2014년 여름, 피렌체행 비행기에 올랐다. 몽블랑으로 이직한 뒤 첫 출장이었다. 독일 브랜드지만, 몽블랑의 가죽 제품은 피렌체에서 만들어진다. 도시의 첫인상은 아름다웠다. 두오모 성당의 붉은 돔과 아르노 강, 베키오 다리와 작은 골목들… 그렇게 주변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가죽 공방들을 만났다. 유리창 너머로 가죽을 재단하는 장인의 투박한 손길. 그 손끝엔 수백 년의 시간이 쌓여 있었다.
피렌체의 상업은 13세기부터 길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금세공인, 직물상, 제화공 등 20여 개 길드가 각자의 영역에서 품질을 보증하고 장인의 활동을 보호했다. 오늘날로 치면 자격증 제도와 협회를 합쳐 놓은 것이다. 재미있는 건 예술가들도 이 길드에 속해 있었다는 점이다. 미켈란젤로는 석공 길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가 길드 소속이었다. 피렌체가 천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장인을 귀히 여기는 피렌체로 천재들이 모여든 것이다.

특히 토스카나 지방의 목축업은 피렌체 가죽 공예의 든든한 힘이 됐다. 양과 소를 키워 고기를 팔고 남은 가죽은 장인들의 손에서 예술의 도구로 재탄생했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염색이 고르게 스며드는 피렌체 가죽의 명성은 14세기 유럽 왕실과 교황청까지 뻗어 나갔다. 15세기 최고의 부호 메디치 가문 역시 길드 경제가 만든 부 위에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다. 기술이 경제를 만들고, 경제가 예술을 가능하게 했다.
이 전통은 20세기 브랜드로 이어진다. 1921년 구찌오 구찌는 피렌체에서 말 안장과 여행 가방을 만드는 작은 공방을 열었다. 영국 귀족들이 쓰던 승마 용품의 품질에 매료된 그는 가죽 기술을 익히고, 피렌체 장인의 손과 귀족 취향을 결합한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성장시켰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의 발을 직접 측정해 맞춤 구두를 만들며 이름을 알렸다. 인체 구조를 연구해 신발을 설계한 그는 1927년 피렌체로 돌아와 브랜드를 설립했다. 두 브랜드의 뿌리에는 가죽에 대한 피렌체의 오래된 기준과 장인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고대 제국의 유산 위에 기독교 정신이 더해진 도시다. 유럽 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두 축으로 로마는 오랜 시간 유럽의 중심이자 선망의 도시였다. 바티칸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황청과 귀족 사회는 신앙과 권위를 금과 보석으로 드러냈다. 성배와 제단 장식, 성모상을 수놓은 금 세공품은 이를 시각화하는 수단이었다. 고대 로마 건축과 조각에서 이어진 구조적 조형미가 기술과 결합하면서, 로마의 금 세공은 대담하고 웅장한 미학으로 발전했다.

1884년 그리스 출신 장인 소티리오 불가리는 로마에 보석 공방을 열었다. 불가리는 고대 로마 건축의 직선과 모자이크의 색채를 주얼리에 담아냈다. 곡선을 강조하는 다른 주얼리와 달리, 불가리의 작품은 건축적이고 대담하다. 콜로세움, 산탄젤로 성, 포폴로 광장 등 로마의 랜드마크에서 끊임없이 디자인 영감을 얻어왔다. 대표적으로 ‘비제로원’ 컬렉션은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받은 원형 구조와 나선형 라인을 통해 로마의 웅장함과 영원을 상징한다.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는 20세기 중반,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영화다. 1950~60년대, ‘타이베르강의 할리우드’라 불린 치네치타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로마의 휴일>, <벤허> 등의 작품이 제작되며 로마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동경하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1925년 로마에서 작은 가죽과 모피 공방으로 시작한 펜디는 로마를 대표하는 쿠튀르 하우스로 성장했다. 로마의 영화 산업의 황금기 속에서 여배우들이 펜디 코트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로마적 우아함의 상징이 되었다. 이 영화적 글래머는 발렌티노 가라바니에게서 절정에 달했다.
1960년, 그는 로마에 아뜰리에를 열고 발렌티노 레드라 불린 강렬한 붉은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 색은 로마 귀족의 전통을 계승하며 사랑과 권력, 열정을 상징했다. 발렌티노는 오트쿠튀르 컬렉션에서 이를 반복적으로 선보였고, 레드 카펫 위에서 여배우들이 그의 드레스를 입으며 영화적 글래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역사적 깊이와 영화의 화려함, 그리고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달콤한 삶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식 라이프스타일)의 감각이 로마 브랜드의 뿌리를 이룬다.

밀라노에 도착하면 또 다른 이탈리아를 만나게 된다. 피렌체나 로마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고 이곳에 오면, 반듯하게 정비된 거리와 금융 기관, 상업 건물이 들어선 도심, 그리고 모던한 건축물이 오히려 생경하게 다가온다. 두오모 성당 옆, 화려한 유리 지붕 아래 펼쳐진 ‘밀라노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걷다 보니 전혀 다른 이탈리아가 보였다. 이곳은 19세기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진 상업 공간으로, 오늘날 쇼핑몰의 시작점이 된 곳이다.

이탈리아가 통일된 19세기 후반, 정치적 중심이 로마였다면 경제적 중심은 북부의 밀라노로 옮겨갔다. 유럽 각국과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과 철도망의 발전, 금융업의 성장은 밀라노를 산업화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소비 계층과 근대적 생활양식이 형성되었다. 기능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디자인과 패션으로 이어졌다. 장식보다 실용을, 화려함보다 절제된 세련미를 선호하는 밀라노 스타일이 이 즈음 자리 잡았다.
밀라노에는 은행과 상점, 백화점이 속속 들어섰다. 전통적으로 귀족의 후원에 의존해서 성장한 예술과 패션은 산업가와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며 산업으로 확장됐다. 작은 공방들은 기업형 브랜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프라다와 아르마니가 있다. 1913년, 마리오 프라다는 밀라노 갤러리아에 가죽 전문점을 열었다. 견고하고 세련된 여행가방으로 주목받은 프라다는 이후 현대적 패션 하우스로 자리 잡았고, 나일론과 같은 산업 소재를 도입하며 럭셔리의 기준을 확장했다. 1975년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구조를 최소화한 부드러운 재킷으로 활동성과 편안함을 강조하며 남성복을 새롭게 정의했다. 프라다는 소재의 혁신을, 아르마니는 구조미의 절제를 통해 밀라노의 산업적 DNA를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했다.
밀라노의 힘은 패션에만 머물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이후 건축,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도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생활 전반을 새롭게 제안하는 도시로 확장됐다. 밀라노 패션 위크와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중심으로, 이 도시는 패션과 디자인, 산업이 한데 모이며 그 힘을 만들어낸다.
이탈리아가 지금의 형태로 통일된 것은 19세기 말에 불과하다. 그 전까지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로마, 나폴리 같은 도시국가들은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각 도시는 서로 경쟁하며 경제와 예술, 장인 문화를 발전시켰고, 그 경쟁이 서로 다른 미학을 낳았다. 이탈리아 럭셔리의 본질은 국가 전략이 아니라 도시국가 경쟁에서 비롯된 자생적 다양성에 있다.
피렌체에서는 길드와 장인의 손이 도시를 지탱했다. 품질과 기준을 중시하는 전통은 가죽 공예와 직물 산업을 꽃피우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로마는 신성과 화려함의 무대였다. 바티칸의 성물 제작과 고대 건축의 조형미는 로마의 권위와 상징을 만들었고, 영화와 패션은 이를 세계로 확장했다. 밀라노는 산업과 금융의 도시였다. 근대화의 합리성과 기능성이 도시 기풍으로 형성되고, 패션과 디자인의 절제된 세련미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세 도시만이 전부는 아니다. 북부 피에몬테의 비엘라는 19세기부터 고급 섬유 산업으로 유명했고, 이곳에서 출발한 제냐는 세계 남성복의 기준이 되었다. 중부 마르케 지방의 장인 슈즈 전통 위에서 성장한 토즈는 ‘고미노’ 로퍼로 현대 럭셔리 슈즈의 아이콘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교역의 항구에서 세계와 연결되었고, 무라노 유리와 비엔날레는 상업 도시가 예술 도시로 변모한 흐름을 보여준다. 대도시와 달리 지방의 산업과 수공업이 세계적 브랜드로 이어졌다는 점은 이탈리아 럭셔리의 폭을 보여준다.
결국 이탈리아 럭셔리의 본질은 다양성에 있다. 국가의 설계가 아니라, 도시와 지방이 각자의 방식으로 축적해온 결과다. 이탈리아 럭셔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도시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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